Opinion & Column

수학-과학 교과서 새로 쓰자, 與野가 함께

dalmasian 2026. 8. 3. 09:50

[김승련 칼럼] 2026.08.02.
너무 중요하지만 교사-학부모 반대 커
韓도 경쟁국도 손 못 댄 수학-과학 ‘교실 혁명’
해낸다면 ‘대체 불가’ 대한민국에 성큼
미적분-나트륨에 정치싸움 낄 여지 어딨나

                 김승련 논설실장
반도체 초호황은 우리를 흔들어 깨웠다. 천문학적 흑자를 통해 반도체가 돈, 기회, 복지를 넘어 국가안보 수단이란 점까지 깨닫게 했다. 또 메모리 시장의 우위를 지키는 것과 함께 인공지능(AI)은 물론 자동차 조선 원전 방산 등에서 경쟁력을 더 키워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생겼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핵심은 수학과 과학이라고 말한다. 한 여성 수학자가 지난해 8월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AI와 수학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GPU는 행렬과 벡터의 병렬연산, CPU는 미적분 기반 알고리즘, 딥러닝의 순(順)전파는 행렬 곱셈, 역(逆)전파는 편미분의 연쇄법칙이다. 확률과 통계 없인 머신 러닝은 불가능하다.” 거론된 이공계 수학을 배운 적은 없지만 한국이 어떻게든 수학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점에 수긍하게 됐다.

상위 30% 학생만 놓고 비교한다면 한국 중고생이 수학과 과학에 들이는 시간과 돈은 세계 최상위권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식 반복적 문제 풀이 교육은 당장의 입시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창의성 토대를 갉아먹는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문제점을 뻔히 알면서도 ‘하던 대로 계속’은 달라질 줄 모른다.

한국은 반도체 메모리 개념을 창안한 적도, 핵심 장비의 개발을 주도한 적도 없다. 그럴 역량이 없었다. 그 대신 기존 시장 질서에 맞서 과감한 산업 진출 및 후속 투자 결정을 했다. 여기에 관리의 힘과 함께 현장 엔지니어들의 공정 개발, 수율 분석 등 섬세한 문제 해결 역량이 더해졌다. 엔지니어들은 수학과 과학을 칠판 강의로만 배운 세대지만 몸에 밴 ‘과학적 공학적 투지’가 오늘을 가능하게 했다.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과거의 주입식·문제풀이만으로는 1등을 따라갈 순 있어도 새 영역 개척은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 10대들을 진일보한 수학-과학 마인드로 무장시키는 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교실은 문제풀이에 매몰돼 있고, 손으로 직접 하는 실험은 영상 교육으로 대체되곤 한다.

나트륨(Na)에 염소가스(Cl₂)를 반응시키면 염화나트륨(NaCl·소금)이 된다. 이런 화학식을 사진 한 장 없이 말로 배운 앞선 세대보단 나아졌다지만 요즘 학생들은 그 실험을 영상 시청으로 대신한다. 나트륨과 염소는 격렬한 빛과 열과 소리를 내며 반응한다. 실험실 가운을 입고 고글을 착용한 중고생들의 과학적 호기심을 뒤흔들 수 있건만, 예산과 안전상 한계에 더해 ‘수능에 안 나온다’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이공계 ‘10만 양병’이란 국가 목표를 위해 수학과 과학 교과서를 다시 쓸 것을 제안한다. 교과서를 다시 쓰자는 것은 수업을 확 바꾸자는 말이다. 초등학생에게 덧셈 뺄셈을 가르칠 때 숫자 개념도 새롭게 정의하고, 중고생이 종이와 펜으로 문제를 풀더라도 그 원리가 뭔지, 또 이런 입시용 문제풀이를 할 수 밖에 없다면 그 내용이 어떤 산업의 어떤 영역에 적용되는지 알고서 하자는 거다.

이런 수업 혁명은 방대하고 골치 아픈 과제일 수밖에 없다. 대입 수능은 객관식 중심의 문제풀이인데, 중고교 수학과 과학 수업만 달라지면 되는 일일까. 선생님들은 준비가 돼 있나. 또 이쪽저쪽 다 챙겨야 하는 학생들의 이중 학습 부담은 어쩌나. 이 질문 앞에 교육 관료와 교육자들은 뒷걸음질 쳤다. 어느 한쪽 대통령이 이를 주도했다가 삐끗하면 정치적 반대자는 어마어마한 공격 소재로 삼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도, 해외 경쟁국도 이런 교실 혁명을 도모하지 못했던 것 아닌가. 3년 전 영국 총리 리시 수낵이 제안한 ‘18세까지 매년 수학(Math to 18)’ 정책도 국내 반발 속에 정권 교체로 흐지부지됐다.

미래 세대에게 수학-과학 마인드를 심는 작업은 해야 할 필요성만큼이나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갖가지다. 어려움을 뚫고 해내더라도 거의 한 세대가 지나야 효과를 누릴 수 있으니 ‘지금의 정부’는 나설 인센티브가 작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로 해낼 수만 있다면 ‘대체 불가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기회가 생긴다.

누가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까. 장기 교육 과제를 다루는 국가교육위원회가 떠오른다. 그러나 이 기구가 심화수학을 수능에 넣자고 제안했다가 여론 반발에 발을 뺀 게 3년 전이다.

정치는 이런 난제를 풀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주도해도 좋고, 여야가 공동 과제로 추진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성공의 과실이나 실패의 비난을 여야가 나눔으로써 정치적 부담을 덜어야 한다.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10년, 20년 지속하는 데도 여야 합작은 유리하다. 멀리 내다보고 이공계 출신 정치인끼리라도 먼저 만나 물꼬를 트기 바란다. 미적분과 나트륨 반응에 이념과 진영논리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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