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가루로 만들 것은 따로 있다

dalmasian 2026. 8. 4. 15:00

[김양재 목사의 후한 선물] 2026.08.04.


곧 광복절이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지배에서 풀려난 날이다. 그런데 나를 지배하는 것은 나라 밖에만 있지 않다. 내 마음에도 주인 노릇 한 것들이 있다. 돈과 성공, 자녀와 인정, 힘과 권력 등이다. 이상한 일은 이런 우상은 고이 모셔 두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말과 댓글, 뒷말로 부순다는 것이다. 엉뚱한 것이 마음을 차지하면 부술 것과 살릴 것을 거꾸로 대하게 된다.

성경에 정말로 가루를 만든 왕이 있다. 요시야다. 잊혔던 율법 책의 말씀을 듣자 옷을 찢으며 회개한 그는, 온 백성과 함께 언약 안에 선 뒤에 손을 움직였다. 헐고 태우고 빻아서 뿌렸다.(왕하 23장) 그런데 그가 가루로 만든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우상이었다. 성전에 세워진 아세라 상을 꺼내어 불사르고 빻아 가루를 만들어 묘지에 뿌렸다.

더 놀라운 것은 우상이 서 있던 자리가 여호와의 성전 안이었다는 점이다. 할아버지 므낫세가 들여놓은 우상이 반백 년을 버티자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예루살렘 성 앞산에는 300년 전 솔로몬이 세운 산당까지 남아 있었다. 가장 지혜롭고 영광스럽던 시절에 심겨진 죄가 가장 오래 간 것이다. 이처럼 요시야가 부순 것은 남이 세운 우상이 아니라 자기 집안이 대대로 쌓아 온 우상이었다. 이 개혁에는 대제사장부터 문지기까지 온 공동체가 함께 움직였다.

우상은 신전에만 있지 않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이것 없이 못 산다고 붙드는 것이 우상이다. 돈이나 권력뿐 아니라 ‘내가 옳다’는 확신도 언제든 우상이 된다. 프랑스 종교개혁가인 장 칼뱅은 인간의 마음을 ‘우상 공장’이라고 했다. 말씀을 떠나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우상은 금세 세워진다. 매일 말씀으로 내 욕심과 죄를 쳐내야 하는 이유다.

우상을 가루로 만드는 첫걸음은 꺼내는 것이다. 감추어 둔 우상은 절대 죽지 않는다. 그러나 믿음의 공동체 앞에 내 입으로 꺼내 놓는 순간, 우상은 타기 시작한다. 반쯤 태운 우상은 반드시 되살아나니 재가 되기까지 태워야 한다.

한 소그룹 지도자의 이야기다. 예순이 넘은 그는 젊은 부부의 힘든 사정을 듣고 옳은 말로 권면했다. 그런데 그 부부가 그 말에 상처를 받고는 다음 모임에서 사과를 요구했다. 그는 변명하지 않았다. 곧장 일어나 “죄송합니다” 하고 “아임 쏘리, 스미마셍, 뚜이부치”까지 4개 국어로 거듭 사과했다. 옳은 말로 사람을 부수면서 정작 자기 옳음과 인정받고 싶은 욕심은 지키고 있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기 죄를 감추지 않고 꺼내 놓으니 굳었던 마음이 풀렸고 크게 번질 뻔한 갈등은 도리어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

사실 요시야는 나라에 임할 재앙이 돌이켜지지 않으리라는 예언까지 들었다. 그래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대신 우상을 부쉈다. 그런데 그런 요시야도 우리도 부술 수 없는 가장 깊은 뿌리가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아브라함은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라고 고백했다.(창 18:27) 욥도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했다.(욥 42:6) 내가 가루임을 인정해야 내 안의 우상이 가루가 된다. 이것이 회개다.

하지만 자기 의와 욕심으로 굳어진 우리의 옛사람은 우리 손으로 빻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늘 거꾸로 한다. 상한 사람은 부수고 오래된 우상은 지킨다. 그러나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사 42:3), 도리어 우리의 죄악 때문에 친히 상하셨다.(사 53:5) 우리가 끊지 못하는 죄와 우상의 권세를 깨뜨리시려고 십자가에 자기 몸을 내어주셨다. 그 십자가가 오늘도 우리를 죄와 우상의 지배에서 해방한다.

이번 광복절에는 우리나라가 압제에서 놓인 해방을 기억하며 지금 내 마음에서 주인 노릇 한 것은 무엇인지 물어보자. 상대방을 부수려던 손을 멈추고, 내 안에 감추어 둔 우상을 주님 앞에 꺼내 놓자. 상한 사람은 살리고 내 안의 우상은 가루로 만드는 것이 해방된 성도의 삶 아니겠는가.

김양재 목사(우리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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