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글, 김정훈)
- JTBC 독점 논란 뒤에 가려진 공익 실종과 보편적 시청권의 위기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JTBC의 독점 중계 사태는 단순한 방송사 간 분쟁이 아니다. 그것은 정부가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한 사건이며,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시장 논리에 방치한 행정 실패의 상징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사태가 충분히 예견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사실상 ‘관망’으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 중재 실패가 아니라 사실상의 직무 유기
정부는 뒤늦게 “보편적 시청권 강화”를 말하고 있지만, 이미 협상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아무런 실질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 분쟁이 폭발한 뒤 제도 개선을 언급하는 것은 행정이 아니라 변명에 가깝다.
올림픽은 특정 기업의 수익 사업 이전에 국민 다수가 함께 향유해야 할 공적 콘텐츠다. 그런데도 정부는 “민간 계약이라 개입이 어렵다”는 형식 논리 뒤에 숨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익이 걸린 사안에서조차 개입하지 못하는 정부는 도대체 언제 존재감을 드러내는가.
특히 KBS, MBC, SBS 등 지상파와의 갈등이 심화되는 동안 방통위는 조정자로서 최소한의 리더십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법적 강제력이 부족했다는 해명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법이 부족하면 국회와 협력해 선제적으로 제도를 정비했어야 했다. 위기가 터진 뒤 “권한이 없다”고 말하는 기관은 감독기관이 아니라 방관자일 뿐이다.
■ 왜 JTBC만 욕을 먹고, 정부는 비켜 서 있는가
이번 논쟁을 지켜보면 묘한 장면이 반복된다. 여론의 화살은 대부분 JTBC를 향한다. “독점”, “상업주의”, “과도한 중계권료” 같은 비판이 쏟아진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자. 사기업이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인 것이 과연 비난받을 일인가.
JTBC는 입찰에 참여했고, 자본을 투입했으며,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철저히 시장 규칙 안에서 이루어진 행동이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존재 방식이다. 오히려 기업에게 공익적 판단까지 기대하는 것이 비현실적일 수 있다.
정작 비판받아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 바로 정부다. 시장이 공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을 때 개입하고 조정하라고 정부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정부는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보다 기업이 더 많은 비난을 받는 현실은 책임의 방향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민간 기업은 자신의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지만, 정부는 자신의 책무를 방기했다.
결국 진짜 욕을 먹어야 할 대상은 ‘시장에 충실했던 기업’이 아니라 공익을 지켜야 할 책무를 다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 관료들이다. 권한이 없었다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다. 권한이 부족했다면 만들었어야 했고, 제도가 미비했다면 고쳤어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상황이 악화되도록 지켜본 것은 무능 이상의 문제다.
■ ‘시장 논리’ 뒤에 숨은 무능
이번 사태에서 정부가 반복한 논리는 단순하다.
“사기업 간 계약에 개입할 수 없다.”
그러나 올림픽 중계는 일반 상품 거래가 아니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초대형 공공재적 성격을 가진 콘텐츠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올림픽을 ‘보편적 접근 이벤트’로 지정해 무료 시청권을 보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가 정말 시장 원칙을 존중했다면 최소한 협상 구조라도 설계했어야 한다. 예컨대 공동 입찰 모델을 제도화하거나 재판매 조건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시장에 던져놓고 “경쟁 결과”라고 말하는 것은 자유시장주의가 아니라 행정 포기다.
더구나 법원의 판단과 담합 논란을 핑계로 손을 놓았다는 설명 역시 책임 회피에 가깝다. 갈등이 복잡할수록 중재자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정부가 어려운 싸움은 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 ‘체육개혁’이라는 이름의 위험한 자기만족
한편 일부에서는 독점 중계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공중파 중심의 ‘메달 지상주의’를 완화하고 스포츠 쇼비니즘을 줄일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얼핏 지적인 문제 제기처럼 보이지만, 현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첫째, 독점이 스포츠 문화를 성숙시킨다는 논리는 근거가 빈약하다. 접근성이 줄어들면 관심도 줄어든다. 관심이 줄어든 스포츠는 저변 확대가 아니라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둘째, “모든 국민이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 역시 본질을 흐린다. 좋아하지 않을 자유와 볼 권리는 별개의 문제다. 공공 이벤트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은 선택의 폭을 넓히는 일이지, 시청을 강요하는 일이 아니다.
셋째, 메달 경쟁을 비판하며 국가주의를 문제 삼는 시각도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국제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국가 대표 체계 위에서 운영된다. 국가적 성취를 기뻐하는 감정까지 ‘쇼비니즘’으로 몰아붙인다면, 올림픽 자체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셈이 된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담론이 결과적으로 정부의 책임을 희석시킨다는 점이다. 구조적 실패를 비판하기보다 “오히려 잘 된 변화일 수도 있다”고 해석하는 순간, 행정 무능은 자연스럽게 면죄부를 얻게 된다.
■ 지금 드러난 것은 방송 권력 이동이 아니라 정부의 공백
이번 사태를 두고 “공중파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방송 권력의 이동이 아니다. 그 변화 속에서 공익을 설계하고 조정해야 할 정부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디어 환경은 앞으로도 OTT와 거대 자본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될 것이다. 만약 지금과 같은 무대응이 반복된다면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 다른 초대형 이벤트에서도 동일한 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사후 입법이 아니라 사전 설계로 움직여야 한다.
방통위 역시 “권한 부족”을 말하기 전에 왜 그런 권한이 필요했는지 먼저 설명해야 한다.
■ 가장 비싼 대가는 결국 국민이 치른다
독점 구조가 굳어지면 선택지는 줄어들고 비용은 올라간다. 접근성은 낮아지고 공공성은 약해진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공익의 최소선을 지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그 최소선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지금 필요한 것은 뒤늦은 유감 표명이 아니다.
책임 인정과 제도 개혁, 그리고 다시는 이런 혼란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분명한 약속이다.
만약 이번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올림픽 중계권 분쟁이 아니라 정부 기능의 공백이라는 훨씬 더 큰 위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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