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애매모호함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dalmasian 2026. 2. 22. 22:40

[남도영 칼럼] 2026.02.20.


애매모호함은 실체 파악이
어렵고 비판 대상에서 제외돼

보수가 극우세력을 '에너지의
원천'으로 인식하는 순간

해법은 없고 혐오와 음모론만
남아 비정상적 결론에 이른다

국힘은 견제 능력을 상실했고
그 책임은 장동혁 대표에 있다

1934년 2월 6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우파민병대, 청년애국단, 프랑스행동 등 수만 명의 극우 세력들이 국회의사당을 공격했다.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했고, 의원들은 도망쳤다.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프랑스 정치인들은 폭동에 분노를 표시했다.

그런데 침묵을 선택한 정당이 있었다. 프랑스의 주요 보수주의 정당인 ‘공화당 연맹’(Republican Federation)이었다. 공화당 연맹은 폭동을 가볍게 치부했고, 때로는 정당화했다. ‘합법 시위’라는 말도 자주 등장했다. 시위자들은 부패와 공산주의, 정치적 교착 상태로부터 프랑스 공화국을 구하려 했던 ‘영웅적인 애국자’로 표현되기도 했다. 프랑스는 폭동 이후 ‘의회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에 소속된 공화당 연맹 의원들은 폭동 주동자들을 옹호했고, 분명한 비판들은 애매한 표현들로 대체됐다. 많은 인물이 공화당 연맹과 극우 단체에서 동시에 활동했고, 정당의 구성원과 극우 활동가 사이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졌다. (스티븐 레비츠키 & 대니얼 지블랫,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어크로스)

90년 전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들이 대한민국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놀라울 정도의 데칼코마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위헌적 비상계엄으로 자폭한 이후 국민의힘은 비상계엄과 탄핵에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많은 이들이 윤 전 대통령을 옹호하거나 침묵했다. 위기에 빠진 보수가 국민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극단주의 세력과 단호히 절연하는 것이었다. 장동혁 대표는 지난해 8월 선출된 이후 중요 고비마다 윤 전 대통령과 ‘윤 어게인’ 세력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받았다.

그때마다 장 대표의 입장은 애매했다. 대표 선출 직후에는 “윤 전 대통령을 접견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고, 지난해 12월 계엄 1주년에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7일 기자회견에서는 비상계엄을 잘못된 수단이라면서도 윤 전 대통령과 관련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지난 10일에는 “절연의 문제를 자꾸 의제로 올리는 것은 분열의 씨앗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연대’ ‘미래’ ‘투쟁’과 같은 추상적인 언어가 난무했지만, 핵심적인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유튜버 고성국씨 입당 등 윤 어게인 세력과 국힘의 융합이 진행되고 있다.

애매모호한 태도는 종종 극단적 주장보다 위험하다. 극단적 주장, 비이성적인 선동은 실체를 파악하기 쉽다. 반면 추상적인 말로 포장된 애매모호함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실체를 파악하기도 어렵고, 직접적인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장 대표는 극우 세력과의 절연 대신 연대를 선택했다. 아마도 이들이 가진 힘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윤 어게인도 하나의 에너지, 그만한 에너지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김민수 최고위원은 지난 10일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엄청난 국민, 어마어마한 세력들이 윤 어게인으로 폄하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화당 연맹 역시 청년애국단 등을 ‘에너지의 원천’으로 인식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동혁호’의 운명을 ‘황교안호’에 비유하곤 한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황교안 대표가 이끌던 미래통합당은 더불어민주당에 103석 대 180석으로 참패했다. 통합당 총선백서는 중도층 지지 회복 부족,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당 차원의 입장 표명 부족, 공천 실패, 중앙당 전략 부재 등을 참패 이유로 꼽았다. 황 전 대표는 박 전 대통령 탄핵 무효와 석방을 주장하는 ‘태극기 집회’ 단체와 선을 긋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을 우군으로 받아들였고, 국민의 외면을 받았다.

양극화, 인구감소와 고령화, AI 쇼크, 지방의 소멸 등 난제가 많다. 정당은 난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얻는다. 극단주의가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해법이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선거의 실패를 부정선거에서 찾고, 위헌적 비상계엄을 옹호하고, 특정 국가를 과도하게 혐오하거나 미화하는 식이다. 혐오와 애매모호함으로는 답을 찾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이 없으면 폐해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는 민주당 독주 체제다. 국민의힘이 견제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이 윤 어게인과 절연하지 못하는 장 대표에 있다.
남도영 수석논설위원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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