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친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

dalmasian 2026. 3. 7. 23:46

[마감을 하며] 2026.02.13.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의 조세이탄광 현장에서 발굴된 유골을 관계자·유족들이 살펴보고 있다. photo 이용규 기자

이용규 기자가 지난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로 출장을 다녀왔다. 우베는 일제강점기 때 강제동원됐다 수몰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유골이 묻혀 있는 조세이탄광이 위치한 지역이다. 이 기자는 지난해 12월에 관련 기사를 보도했는데, 공교롭게도 1월에 있었던 한·일 정상회담 의제로 알려지면서 탄광이 주목을 받았다. 이 기자는 첫 취재 때부터 준비했던 유골 발굴 현장 취재를 다녀왔다. 유골 발굴을 주도하는 건 이노우에 요코 '새기는 회' 대표다. 비약 같지만 이번호에 실린 그의 인터뷰를 보며 문득 30년 전 고등학교 때 여행이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경북 경주 옆 감포로 떠났던 여행이다. 경기도 부천에서 학교를 다니던 친구 5명이 여름방학을 맞이해 감포해수욕장으로 기차와 버스를 타고 떠났다. 사실 여행이 전부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회덮밥이란 걸 처음 먹었고, 친구와 사우나에서 벌거벗고 '누가 더 롱다리인지를 정확히 비교해보자'며 거울 앞에 섰던 기억이 난다. 그 여행을 제안했던 게 나였는데, 거기엔 묘한 철학 같은 게 작용했다. 그 시절부터 나는 사람이 친해지려면 세 가지를 같이 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같이 밥을 먹는 것, 같이 잠을 자는 것, 같이 씻는 것. 아무리 사이가 틀어져도 사람이 사는 데 반드시 해야 하는 '보편적 행위' 세 가지를 함께 하면 관계가 서서히 회복된다. 어려운 건 이것을 같이하기로 하는 마음을 먹는 일이다.

이런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건 이노우에 대표가 과거사 문제를 푸는 방식이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다. 물론 개인끼리의 갈등을 푸는 것과 국가 간 갈등을 푸는 건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가장 사소한 것이 가장 보편적인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는 이야기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 보상이나 사죄 같은 거창한 단어는 집어치우고, 일단 유골부터 돌려주자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그는 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일본 정부에 보상을 말해봤자 해주지 않는다. 거기서 끝나버린다. 유골이라는 인도적 문제를 내세워 '안 하겠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싶다. 그다음에 일본의 가해 책임이라든가 사죄가 있는 것이지, 우선 일본이 유골을 반환하는 도리조차 못 한다면 사죄 같은 것은 받아낼 수 없다."

때로는 책임을 따지는 순서보다, 함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을 만드는 일이 관계를 움직인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밤을 보내고, 함께 씻는 것처럼 서로가 거부하기 어려운 최소한의 행동을 공유하는 일. 국가 간 갈등에서도 그런 '작은 시작'이 있어야 비로소 책임과 사과를 말할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혁진 편집장 spaingog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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