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5.

(왼쪽부터) 유승민 photo 뉴스1, 이준석 photo 뉴시스, 한동훈 photo 뉴스1
한국 보수가 가장 서투른 게 있다면 스스로의 자산을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느새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 멀게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처럼 용병을 데려와 대선을 치르려는 버릇이 생겼다. 벌써 10년 가까이 아스팔트 우파라는 독약을 마시고 있는 보수정당이 선거가 임박할 때마다 '합리적 인물'을 바깥에서 찾는 것이다.
앞으로는 그런 시도 자체가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 진정성을 의심받는 것은 물론이고, '뉴이재명'을 표방하는 이재명 대통령이 중도우파를 잠식하고 있어서다. 보수정당의 전성기엔 민주당의 보수 대안화(化)를 막을 수 있는 방파제가 있었다. 중도우파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당내 지지기반을 딛고 대통령이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그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라는 어젠다로 모자란 확장성을 보완했다.
지금 그럴 잠재력이 있는 인사들은 오세훈 서울시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보수 본당인 국민의힘을 떠나 있거나 정치 전면에서 물러나 있다. 당내에서는 강성 지지층의 격렬한 증오를 받으면서도, 이 대통령 시대에 와서는 중도우파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나타내기 어려워져 양면으로 치이는 꼴이다. 보수의 대안일 때 빛나지만 운신의 폭이 현재로서는 넓지 않은 그들의 현주소는 비슷하다. 오 시장 정도만 일단은 서울시장 5선을 목표로 두고, 당내 투쟁 쪽으로 방향타를 잡은 모양새다. 그러나 이들 모두 다음 행보는 동상이몽이다. 유승민, 이준석, 한동훈(가나다 순)이 그렇다.
유승민의 길, 보수 통합의 마중물 될까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결국 이번 지방선거에 경기지사 후보로 출마하지 않았다. 유 전 의원 입장에서는 희생을 요구받는 상황으로 해석될 만하다. 유 전 의원에게는 2022년 경기지사 경선에서 '윤심'을 등에 업은 김은혜 후보가 돌연 출마하고, 지역 당협위원장들의 외면을 받으며 경쟁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됐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렇다고 당이 이번엔 '진심'으로 설득한 것도 아니다.
장동혁 대표에게는 지난해 연말부터 "최소한 서울 오세훈, 경기 유승민 구도를 만들어야 지선 승산이 있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전달돼 왔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을 오랫동안 물고늘어진 '절윤 진정성' 문제까지 해소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장 대표는 '본인이 출마 의사를 먼저 밝히지 않는데 우리가 모셔올 필요가 있느냐'는 취지의 반응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는 지난 3월 초에야 '만나고 싶다'는 의사만 한 차례 표했고, 유 전 의원 측은 경기지사 문제 때문이라면 불출마 입장이 변하지 않았다고 에둘러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더불어민주당이 김부겸 전 국무총리를 결국 대구시장 후보로 만든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9월부터 지역 인사들은 물론 중앙당 인사, 재야 인사를 가리지 않고 김 전 총리의 출마를 간곡히 설득했다. 유 전 의원 측 인사는 "장 대표 체제에서 당이 변화하고 혁신하지 않거니와, 선거가 임박해서 본인들이 힘드니까 같이 하자는 게 말이 되나"라며 "희생을 하더라도 명분이 있고 대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유 전 의원은 올해 들어 경기지사 불출마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힐 때마다 "내게 남은 소명은 보수정치 재건"이라는 언급을 꼭 남기면서, 분열돼 있는 보수 진영의 화학적 결합을 강조했다. 그에게 한동훈, 이준석 등 중도우파 후보들과 성향상 공통분모는 없지 않다. 한동훈 전 대표의 제명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다. 다른 무엇보다 유 전 의원 본인의 확장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윤 어게인이 폐족을 선언하고 2선으로 물러나야 답이 나오는 것"이라며 "중도 지향의 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들어져야 유 전 의원의 역할도 생긴다"고 말했다.
이준석의 길, 당의 체급을 올려라
"지난 대선 끝나고 8개월 동안 매달렸던 건 이 당을 영속화하기 위한 사무의 자동화였다. 우리 이번에 20억 흑자라는 얘기가 돌지 않았나? 대선을 치르고 나서도. 같은 돈으로 10배는 효율적으로 쓰는 방식을 가져가야 우리가 버틸 수 있다. 이를 통해 대중의 지지를 받는 것에도 또 다른 복안이 있지만, 내실을 다져놓고 확장으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티핑포인트가 올 것이다."
지난 3월 초 개혁신당의 'AI 선거 사무장' 앱에 대해 물으러 이준석 대표를 찾았을 때, 그는 해당 앱 자체보다도 AI를 활용한 전반적 당무 자동화 작업에 대해 공을 들여 설명했다. 그가 개별적인 시스템에 대해 풀어놓는 이야기는 얼른 알아듣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당직자가 정규직 7명뿐인 작은 정당이 택할 수 있는 돌파구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 몇 달간의 '연대론'에 대응해 당분간은 '자강'에 힘쓸 것이라는 표지로도 보였다. 개혁신당은 이번 지선에서도 기초의원 출마를 적극 독려하며 독자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이준석 대표가 2024년 초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개혁신당을 창당할 당시 기획했던 것은 '중도 빅텐트' 정당이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 금태섭 전 새로운선택 대표 등이 모였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러나 지지자들의 격렬한 반대로 합당이 무산되고 범보수권 정당으로 남게 되면서 '언제 국민의힘에 재합류할 것이냐'는 의구심을 계속 받아 왔다. 일각에서 띄우는 연대론도 그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아스팔트 우파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민의힘의 대안세력으로 모여달라는 뜻이지만, 결국은 국민의힘 바깥에서 독자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받아든 성적표의 빛과 그림자가 뚜렷하기도 하다. 8.34%(291만7523표)를 득표해 양당 소속이 아닌 만 40세 초선의원으로는 매우 선전했고, 서울(9.94%)과 세종(9.89%) 등 수도권의 젊은 인구가 자신의 지지기반이라는 것도 확인했다. 수도권의 대규모 반도체 사업장이나 대학이 인근에 있는 투표소에서는 30%대 득표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한 것은 확장성에 대한 의구심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젊은 층에 호소하는 합리적 보수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남아있는 주자"라면서도 "보수가 이 대표를 당장 선택하기에는 비호감도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지선을 앞둔 지금 현실적으로 택할 수 있는 연대의 대상은 없다. 국민의힘이 강성 보수에 갇혀 있는 동안 개혁신당의 운신의 폭이 넓을 것이란 판단이다. 개혁신당 지도부급 인사는 "국민의힘은 지선 국면에서 당으로서 존속을 할 수 있는지부터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지금으로서 적극적으로 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 대표가 한 전 대표 측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개혁신당은 한 전 대표의 측근으로 꼽히는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을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다음 총선을 내다보면 시간이 있다. 국민의힘의 지선 참패를 전제로, 원래부터 이 대표와 교분이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선 이후 당권에 가까워지면 느슨하게라도 연대의 가능성이 열린다. 개혁신당 관계자는 "침몰하는 배에 같이 탈 수는 없으니 단순한 합당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신당을 세우면서 합리적 세력들이 들어가는 모습은 만들어질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먼 이야기"라고 말했다. 박 평론가는 "이대로 국민의힘이 쪼그라드는 상황이면 정말 수도권 보수신당이 생길 수도 있다"며 "여기에 이 대표가 당 대 당 통합으로 결합하는 방식도 생각해봄 직하다"고 말했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올 시간이 머지않은 만큼, (중도보수) 연대론의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했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개혁신당과 이 대표가 택할 수 있는 것은 자강뿐이다. 당 관계자는 이렇게 전했다. "창당 초기부터 합당에 적극적이던 인사들이 지금은 거의 다 당을 떠났다. 연대론에 지겨울 지경이다. 연대를 하더라도 지금 합치는 건 말이 안 된다. 국민의힘의 변화를 전제로 느슨한 정책연대부터 시작하는 건 가능해 보인다. 아무튼 총선까지 당의 체급을 튼튼하게 만들어야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한동훈의 길, 보수 본류의 승인을 받아라
한동훈의 정치적 '초'목표는 무엇일까. 연극론에서는 한 등장인물의 극 전체를 관통하는 궁극적 동기를 '초목표(Super Object)'라고 한다. 극중 인물의 행동과 감정은 모두 여기서 나오는데, 요컨대 영화 '마더'에서 김혜자씨는 '아들 원빈을 지키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초목표란 표면적으로 '보수 재건', 실질적으로 '대권'일 것이다. 보수 정체성의 정치인이라면 두 목표의 방향은 대략 일치하게 돼 있다. 중요한 것은 극을 진전시키는 것이다. 세부적 국면에 따라 작은 목표들을 풀어가며, 자신의 목표에 따라 극을 이끌어야 주인공격 인물이 된다.
일단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한 전 대표가 후퇴할 여지는 거의 없다. 2년 뒤까지 전국단위 선거가 없기 때문이다. 제명 처분으로 당적을 박탈당한 상태에서 이번 선거에 불출마한다면 그의 정치적 모멘텀은 사라진다. 그래서 지금 한 전 대표 안팎에서 설정한 이번 선거국면의 목표는 '보수 본류의 승인을 받으면서 정치생명을 유의미하게 연장하기'다. 영남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원내에 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스팔트 우파의 자장 안에 있는 보수층 일각은 한 전 대표를 위시한 재건에 동의하지 않고, 재보궐 출마 역시 한 전 대표는 아직 종속변수 입장에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모두 달성하면 보수진영의 주연으로 복귀해 극을 이끌 수 있다.
한 전 대표가 지난 2월부터 영남을 거듭 방문하는 것도 여기서 기인한다. 지난 2월 27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서볼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3월에는 부산을 일주일 새 두 번이나 찾았다. 7일 북구 구포시장을 방문해 지지자들을 만났고, 14일에는 동래구 사직야구장을 찾아 프로야구 시범경기를 관전했다. 대구와 부산은 '보수 본류'이면서도 지역 국회의원들의 시장 선거 출마로 재보궐선거가 있을 것이라 전망되는 곳이다.
한 전 대표 측 한 관계자는 주간조선에 이렇게 전했다. "아직 아무것도 안 정해졌다고 누차에 걸쳐 말씀드리고 있다. 그러나 가능하면 이번 재보선에서 보수 본류에 해당하는 유권자들에게, 구보수와 신보수의 길 가운데 무엇이 맞는지 선택의 기회를 드려야 한다고 본다." 그는 원내 진입이 최우선이라는 의견이 측근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했다. 지방선거가 아닌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이유에 대해 "지방선거는 의원들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보수가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며 "한 전 대표가 보수 본류의 판단을 받아 원내로 들어오면 보수 재건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보궐 지역구가 아직 확정되지 않아, 한 전 대표 본인도 출마지를 정하지 않은 상황이다. 대구는 주호영 의원이나 추경호 의원이 지자체장 선거에 나서면 각각 수성갑과 달성군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부산은 사실상 민주당 유력 후보인 전재수 의원의 북구갑, 주진우 의원이 경선을 통과하면 비게 되는 해운대구갑이 보궐 지역으로 유력하다. 대진표가 윤곽이 잡히면 마지막에 움직인다는 것이 한 전 대표 측의 전략이다. 해운대구갑의 경우 친한계로 꼽히는 주 의원의 부산시장 출마는 한 전 대표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고, 출마 선언 이후로도 한 전 대표가 주 의원의 경선 통과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한 전 대표가 부산에서는 당선 가능성이 높다"며 "부산은 대구와 달리 전략적 선택을 하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산 시민들 사이에서는 시장은 몰라도 국회의원으로는 한동훈을 선택해줘야 한다는 정서가 강하다"며 "의원은 여러 명이 있으니 정치적 역할을 하라는 주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람 하나쯤은 있어야지.' 마치 대구에서 김부겸 전 국무총리를 보는 시선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영남에서 되기만 한다면 전국 선거에선 그런 애매함이 오히려 좋다"면서도 "그 단계를 넘지 못한다면 다음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우클릭 속, 존재감 드러날까
이들은 보수 본류의 마음을 돌리고 중도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세 사람 모두 정치적 초목표를 달성하려면 뚫어내야 하는 과제다. 지금 당장은 여지가 넓지 않다. 이 대통령이 '우클릭'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결국은 이념적으로 우파일 수 없는 이 대통령의 한계를 꼬집어야 이들에게 공간이 열린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석현 정치평론가는 "중도우파의 전선이 밀려 있는 상황이라도 잘만 하면 된다"면서 "이를테면 현금성 재난지원금 정책 같은 건 '붙어볼 만한' 의제인데, 그런 역량이 분산돼 있다"고 지적했다.
앞선 이종훈 평론가는 이런 평도 덧붙였다. "앞선 세 사람은 '천재형' 정치인들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개인은 뛰어난데 팀플레이가 안 된다. 오세훈 시장까지 때로 포함하는 연대설을 남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띄워야 하는 것 아닌가. 장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인 상황에서 지금처럼 좋은 기회가 어딨나. 정치인은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용규 기자 using_ky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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