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유시민 ‘ABC론’에 과학이 건네는 훈수

dalmasian 2026. 4. 6. 06:13

[朝鮮칼럼] 2026.04.05.
소속감 갈망하는 인간
단순한 ABC 분류로도
편가르기 쉽게 일어나

다양한 정체성 교차하는
우리의 현실 받아들여야
편견·갈등 줄일 수 있다

유시민 작가는 매불쇼에 출연해 더불어민주당 내 지지층 구조를 ABC로 분류했다. /유튜브 영상 캡처

1970년대 초, 영국의 한 중학교. 14세 남학생들에게 클레와 칸딘스키의 추상화를 보여주며 선호를 물었다. 그런 다음 그들을 두 집단(클레 또는 칸딘스키)에 ‘무작위로’ 배정했다. 즉, 진짜 취향 집단도 아닌 무의미한 분류였다. 참가자들 사이에는 어떠한 이해관계도 없었으며 서로 만나게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들에게 다른 참가자의 소속 집단을 보여주며 점수(돈으로 환산)를 매기게 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자기 진영의 참가자에게 더 후한 점수를 줬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상대 진영에게는 매우 박한 점수를 준 것이다.

폴란드계 유태인 사회심리학자 헨리 타지펠이 수행한 이 실험은 전설이다. 2차 대전에서 거의 모든 가족을 잃은 그는 전쟁이 끝난 뒤 단 하나의 질문에 매달렸다. “인간은 왜 이토록 쉽게 편을 가르는가?” 평생에 걸친 그의 대답은 불편할 만큼 단순했다. 편가르기에는 이유가 필요 없고 얇은 선 하나면 충분하다는 사실.

이 발견은 상식을 뒤집었다. 그때까지 학계는 집단 간 갈등이 자원 경쟁이나 역사적 적대감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밝힌 것은 경쟁이나 원한, 이해 충돌도 없이 단지 범주 부여만으로도 심각한 편 가르기가 유도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동전 던지기로 집단(앞면 또는 뒷면)을 나눠도 상대편을 폄훼하는 일은 줄지 않는다. 우리가 악당이어서가 아니다. 인간은 쉽게 소속을 만들고 재빨리 그곳에 마음을 건넨다. 자기 집단의 지위를 높여 자존감을 유지하려 하며, 그 과정에서 외집단(外集團)을 자동으로 깎아내린다.

후속 연구들은 더욱 놀랍다. 개인들이 범주로 나뉘면 두 가지 왜곡이 작동한다. 같은 범주는 실제보다 더 동질적으로, 다른 범주는 실제보다 더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범주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하는 것이다. 한 연구에서는 ‘최소 집단(무의미한 기준으로 나눈 집단)’에 배정된 직후, 즉 의식적 판단이 개입하기도 전에 이미 내집단(內集團)에 대한 긍정적 연합이 형성된다는 것이 입증됐다. 편 가르기는 숙고의 결과가 아니라 거의 자동에 가까운 ‘반사’다.

이것은 사회적 학습의 산물일까? 가령, 세 살 아이들을 무작위로 그룹에 배정했더니 명시적 선호는 물론 암묵적으로도 내집단 편향이 나타났다. 즉, 좋은 행동은 자기편 속성, 나쁜 행동은 상대편 속성으로 여겼다. 범주화에 의한 편 가르기는 본능에 가깝다.

타지펠의 이러한 최소집단 실험은 지난 반세기 동안 반복 검증된 연구 중 하나로서 결론적으로 단 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 범주가 주어지면 편가르기가 뒤따른다는 사실. 동전 던지기로 나눠도, 셔츠 색깔로 나눠도, 온라인 익명 환경에서 나눠도 결과는 동일하다. 학자들은 이것을 ‘단순 소속 효과’라 부른다. 심지어 범주의 내용도 거의 상관이 없다. 클레든 칸딘스키든, 빨간 셔츠든 파란 셔츠든, 그저 A든 B든.

다행스럽게도 심리과학은 해법도 함께 제시한다. 사람들을 하나의 이분법으로 나누면 편 가르기가 극대화되지만, 교차하는 여러 범주를 동시에 부각시키면 편향이 유의미하게 줄어든다. 예컨대 부모이고 직장인이며 경기도민이고 여성인 한 사람이 부동산 정책에서는 진보처럼 행동하지만, 검찰 개혁에 대해서는 보수처럼 판단할 수 있다. 이것이 실제 인간에 가깝다. 범주가 하나일 때 세계는 ‘우리’와 ‘그들’로 쪼개지지만, 범주가 교차하면 경계가 흐려지고 사람들은 상대를 유형이 아니라 개인으로 보기 시작한다.

최근 유시민 작가가 제시한 이른바 ‘ABC론’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는 여권을 가치 지향의 A, 이익 추구의 B, 양자의 교집합 C로 분류했다. 의미 없는 범주로도 내집단 편애와 외집단 폄훼가 발생하는데, ABC론은 거기에 도덕적 위계까지 내장한 셈이다. 정치권 내부에서 논쟁이 격해지자 유 작가는 “분석 도구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정치 세계에서 이 ‘ABC 분류기’의 엔진은 쉽게 꺼질 것 같지 않다.

물론 누구든 특정한 분류법을 주장하거나 옹호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인간의 사회성에 대한 ‘과학’은 명확한 지점에 서 있다. 분류는 분석이 아니다. 분열이다. 갈등의 버튼이다. 정치는 영혼의 분류학이 아니다. 분류의 본능을 제어하는 교차의 기술이다. 이것이야말로 과학이 정치에 건넬 수 있는 훈수다.

장대익 가천대 스타트업칼리지 석좌교수·인지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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