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2026.04.22.
| 장문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초강대국 미국이 이란을 압도적 군사력으로 타격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절대 권력을 초조하게 강변하는 현실이 어딘지 불안하고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절대 권력의 부름에 우방들이 즉각 응하지 않는 현실도 낯설고 비현실적이다. 절대 권력이란 무엇이고, 권력은 얼마만큼 절대적일 수 있을까? 문득 전쟁과 내전, 혁명이 교차한 17세기 영국에서 절대 주권을 정당화한 토머스 홉스가 떠오른다.
이 비범하고 명석한 철학자는 법이 없는 자연 상태를 가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런 무법 상태에서 개인들은 모두 평등하다. 약자도 강자를 죽일 힘이 있다는 점에서 평등하다는 말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그런 자연적 평등 외에 타인을 침해하고서라도 자기 생명을 보존할 자연적 권리도 있으므로, 거기서의 삶은 “고독하고, 비참하며, 험난하고, 잔인하며, 짧다”. 그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견디긴 힘들다. 평화와 질서를 얻기 위해 개인들은 계약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하고 주권자에게 복종한다. 그렇게 다수 대중의 권리로 온몸을 감싼 절대적 주권자가 성경에 나오는 괴수(리바이어던)처럼 탄생한다.
눈여겨볼 점은 주권자가 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유컨대 자연 상태에서 으르렁대던 늑대들이 계약을 맺을 때 미래의 주권자가 될 늑대는 한가로이 잠자고 있었다. 이 게으른 늑대가 깨어보니 자신은 주권자가 되고 다른 늑대들은 순한 양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주권자는 계약서를 본 적도 없거니와 계약 위반의 책임도 없다. 아예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각자가 권리를 양도하고 주권자의 행위를 승인한다고 못 박는다. 그가 양도에 승인까지 덧붙인 것은 행여 주권자가 비난받을 때 그대들이 승인하지 않았냐고 항변할 안전장치를 하나 더 두기 위함이다.
그러나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 백성들은 권리를 양도한 후에도 주권적 행위의 ‘원작자’로 남아 있다고 말이다. 그들이 권리를 포기할 때 자기보존의 권리마저 포기한 건 아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보호해달라고 주권자의 행위를 승인하는 것이고, 주권자는 이를 위해 무제한적 권리를 행사한다. 하지만 그들은 주권자가 자신들을 지킬 임무에서 실패하는 일을 결코 승인하지 않을 것이다. 주권적 권력이 평화를 유지하고 개인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주권자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그에 대한 복종의 의무도 사라진다.
홉스는 절대 왕정을 완벽히 변론했지만, 논증 방식은 왕당파의 눈에 불온해 보였다. 정부에 앞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정부 수립을 결정하며, 이들의 지속적 승인을 받지 못한 정부는 복종도 얻지 못하리라 암시하는 그의 논변은 왕당파에겐 불쾌하고 위협적이었다. 절대 권력의 증명이 절대 권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꼴이었다. 한 귀족은 이렇게 말했다. “내 친구 홉스여, 자네가 책을 쓴 충정은 이해하네만, 책을 쓰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을.”
사실 절대 권력은 굳이 증명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권력을 강변하는 순간 권력은 미심쩍게 보인다. 이런 권력의 역설은 오늘날 국제 관계에서도 확인된다. 국제 관계는 각국이 자기보존의 권리가 있고 소국도 대국을 해코지할 최소한의 힘을 지닌 자연 상태와 같다. 이 홉스적 무대에서 초강대국 미국이 일종의 주권자로서 금지하고 허용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 이란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절대 권력이 동맹국들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하는지, 또 동맹국들이 미국에 지속적으로 동의를 표할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압도적 힘을 과시하며 말을 쏟아낼수록 점점 더 사람들은 미국의 패권이 자연적이고 자명한 것은 아니라고 느끼게 된다.

장문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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