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2026.04.28.

요즘 주식시장에서 로봇은 미래를 설명하는 가장 편리한 단어가 됐다. ‘휴머노이드’ ‘피지컬 AI’ 같은 말이 붙으면 기업의 현재보다 가능성이 먼저 평가된다. 로봇 관련 사업이 본업의 일부에 그쳐도 시장은 ‘미래 산업’이라는 이름표에 반응한다.
하지만 로봇 산업 안쪽의 표정은 다르다. 로봇 회사를 운영하는 A 대표는 “앞으로 몇 년을 버티기 어려운 기업이 수두룩한데 투자금은 몰리고 주가는 천장이 없는 것처럼 뛴다”고 했다. 로봇 관련 사업을 하는 대기업의 한 임원은 “실제 사업은 로봇과 관련이 크지 않은데 로봇 카테고리로 묶인 덕분에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금의 로봇 열풍에는 기술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이름표가 만든 착시가 섞여 있다.
이 착시에 스스로 올라타는 기업도 적지 않다. 요즘 로봇 업계 홍보 자료에는 휴머노이드, 피지컬 AI, 실시간 행동 제어, 풀스택 플랫폼 같은 말이 반복된다. 읽다 보면 국내 기업이 로봇의 몸체와 두뇌를 모두 내재화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국 로봇 플랫폼을 들여와 한국 브랜드로 껍데기만 바꾸거나, 로봇의 핵심 동작을 제어하는 내부 알고리즘을 외부 기술에 전적으로 기대면서 피지컬 AI를 자체 구현했다고 홍보하는 경우도 있다. 투자 유치나 기술특례상장, 정부 과제를 따내는 데 이런 포장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 로봇이 처음부터 뒤처져 있었던 건 아니다. 카이스트 연구진이 개발한 휴보는 2015년 세계 최고 권위의 재난 구조 로봇 대회인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우승하며 한국 휴머노이드 기술의 가능성을 세계 무대에 보였다.
그러나 휴머노이드 시장이 미처 열리기 전에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협동 로봇과 산업용 로봇으로 방향을 틀었고, 연구 인력도 흩어졌다. 그사이 미국과 중국은 피지컬 AI 경쟁으로 달려갔다. 국내 업계에선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한국은 잃어버린 10년을 보냈다”는 한탄이 나온다.
투자와 정부 과제를 따내기 위해 쉬운 길을 택하는 사이, 중국 로봇 기업들은 무서운 속도로 격차를 벌리고 있다. ‘깡통 로봇’이라 폄하받던 중국 로봇은 춤추기, 권투, 덤블링 같은 단순한 퍼포먼스를 구현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평가를 받았다. 부족한 점은 다음 제품에서 고쳤고, 그 과정에서 부품 공급망과 제어 기술, 현장 적용 경험도 함께 축적했다. 지난해 전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출하량의 87%는 중국 기업 제품이었다. 축적한 데이터를 토대로 로봇의 두뇌인 파운데이션 모델과 핵심 알고리즘까지 선점하고 있다.
국내 로봇 기업에도 모터, 제어기, 감속기 같은 하드웨어 부품에서 쌓아온 저력은 남아 있다. 그러나 이를 독자적인 플랫폼으로 엮고 실제 현장에서 데이터를 쌓지 못하면 부품 경쟁력만으로는 피지컬 AI 시대를 따라잡기 어렵다. 가짜 성과로 덧칠한 분칠이 벗겨지고 남의 알고리즘만 남은 껍데기 시장에 우수한 인재가 모일 리 없다.
로봇 시장에서 선도 국가와 기술 격차가 벌어져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우리나라가 어떤 기술을 갖춰야 하는지부터 가려내야 한다. 당장 정부 정책 과제부터 현실 진단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화려한 단어로 포장한다고 로봇 기술이 마법처럼 생기지 않는다. AI 로봇 시대에 한국이 또 잃어버린 시간을 맞게 될 것이란 경고를 흘려듣지 않길 바란다.
최지희 기자 h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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