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글, 최진석
나는 5.18을 헌법 전문에 새기는 것에 반대한다.
나는 고향 땅 전라도에서는 한심한 사람이거나 미친놈이거나 배신자란 소리를 듣는다. 2020년 12월에 “나는 5.18을 왜곡한다.”라는 짧은 글을 발표하고 나서 그 비판적인 소리는 절정에 올랐다. 5.18역사왜곡처벌법은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무덤에 묻는 구속이기 때문에, 특정 정당의 전유물로 결박된 5.18을 구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래야 5.18을 “민주화의 빛나는 횃불”로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썼었다. 왜곡한다고 쓰니까 진짜 왜곡한 줄 아는 것 같다. 몇 줄 안 되는 그 짧은 글에서 마지막 두 줄, “5.18역사왜곡처벌법에/ 21살의 내 5.18은 뺏기기 싫어.”만 읽어도 5.18을 지키려는 절규임일 알 것이다. 나는 그해 5월 18일 모 TV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 생각을 분명히 밝혔었다. “5.18 민주화 운동은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횃불입니다.”
5.18을 헌법 전문에 넣는 것을 반대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시공간적 한계에 갇힌 추격국가와 전술 국가로 살았다. 이제는 시공간의 무한한 확장 속에서 영원을 설계하는 선도국가와 전략 국가로 도약해야 할 때이다. 지금 우리에게 이것보다 더 큰 사명은 없다. 이제 나라를 국가답게 만들어야 할 때이다. 국가는 우선 영원한 꿈으로 세워진다. 국가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신화적 구조를 지향한다. 어느 나라도 국가를 세우면서 시간적인 한계를 정하지 않는다. 우리도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영원히 “길이 보존할” 대한민국을 세우지 않았는가. 그러나 역사적인 경험은 시공간에 제약된다. 역사적 사실이 아무리 아름답고 비장해도 시공간의 제한 속에 있다. 그래서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무한한 시공간을 설계하는 국가의 정신을 제한하면 안 된다. 헌법 전문은 단순히 서문이 아니라 법령 해석의 기준이 되는 최고 규범이다. 특정 사건이 전문에 들어가는 순간, 역사적 진실을 법원이 판결로 확정 짓는 사법적 전체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그래서 미국, 일본,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헌법 전문에 구체적인 경험 세계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 들어간 예는 없다. 영국은 성문헌법 제도가 아니라서 헌법 전문이 아예 없다. 중국만 1949년 공산당의 지도하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었음을 밝혔을 뿐이다. 그마저도 다른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은 들어가 있지 않다. 이탈리아에도 헌법 전문 없이 헌법 전문 역할을 하는 기본원칙이 12조 제시되는데, 그 안에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이 들어가 있지는 않다. 나치 시대를 겪은 독일도 ‘나치 시대’라는 역사적 사건을 넣은 것이 아니라, “신의와 인간에 대한 책임”이라는 문구로 승화된 정신을 담아 넣었다. 역사적인 사건을 크게 저지르고 당하기도 한 일본의 헌법 전문 어디에도 구체적인 사건이 기록되지는 않는다. 정신으로 승화시켜, 평화주의, 국민주권, 평화적 생존권으로 담았을 뿐이다. 프랑스 헌법 전문에 1789년이라는 구체적 년도가 들어가 있지만, 이것도 구체적인 사건을 기록하는 목적보다도 ‘인권선언’이라는 정신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정말로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영원히 “길이 보존할” 대한민국을 가지고 싶다면, 5.18을 헌법 전문에 넣으려 하지 말고, 오히려 이미 들어가 있는 역사적 사건들도 빼고, 3·1 정신은 ‘독립’으로, 4·19 이념은 ‘민주’로 환치될 때 비로소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영원성을 획득한다. 그럼,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승화한 영원성은 무엇인가? 이것이 5.18을 지키고 승화하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5.18을 헌법 전문에 넣는 것을 반대하는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위험한 사람들이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위험한 사람들이라 하는 말은 대한민국의 존립이나 정체성에 위험하다는 뜻이다. 5.18을 정치적 자산으로 성장한 세력은 줄곧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의지를 표명해왔다.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는 나라로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끊임없이 “자유”를 삭제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2018년에도 이런 개헌을 시도했었다. 왜 “자유”를 빼려고 하는가? 그들은 해방 후부터 줄곧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고 싶어 하는 염원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제 언론 기고문, “사회주의의 꿈, 8부 능선에 서다”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문제와 헌법을 파괴하는 시도는 그들에게 한 몸이다.
5.18의 성지 광주에서는 북한군의 일원으로 또 중공군의 일원으로 6.25 전쟁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을 적으로 놓고 싸운 사람의 동상을 세우고, 거리 이름을 정율성로로 바꾸고, 정율성 음악제 등등을 함으로써 기리고 있다. 그의 생애를 기리는 행위가 과연 헌법적 가치인 ‘자유’와 ‘민주’와 병립할 수 있는가? 5.18을 정치적 자산으로 하는 세력은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사람을 기리는 일과 대한민국을 세운 사람들을 폄훼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여기서 일일이 다시 쓸 필요가 없을 정도다. (제 언론 기고문 “쿼바디스, 대한민국”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5.18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세력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다가, 대한민국의 헌법도 가벼이 여긴다. 검사 탄핵 남용, 삼권 분립의 파괴, 재판의 중립성 훼손, 사법권 및 임명권 침해, 잦은 특검 등의 위헌적 요소들은 사실 너무 잦고 일상화되어서 이제 감각이 없어진 정도다. “누구도 자기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문구는 현대 법치주의의 근간인 자연 정의(Natural Justice)의 제1원칙으로, 공정성의 원칙이나 권력 오남용 방지를 위한 헌법적 가치를 담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 본인이 피고인인 사건을 자신이 임명한 특검이 다루고, 심지어 공소까지 취소할 수 있게 하는 것은 현대 법치주의의 근간인 이해충돌 금지와 삼권 분립을 정면으로 파괴하는 것이다. 이런 헌법 파괴행위가 대한민국 주도 세력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데, 민주화를 부르짖었던 사람들마저도 입을 닫고 있으니, 민주주의의 자정 능력이 상실된 시대의 징후가 짙다.
내가 5.18을 헌법 전문에 새기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헌법 전문은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선 영원의 설계도여야 하기 때문이다. 5.18을 개별적 사건으로 전문에 넣을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불굴의 저항 정신을 ‘자유’, ‘인권’, ‘민주’ 등의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켜 담아내야 한다. 그것이 5.18을 진정으로 영원케 하는 길이다.
둘째, 개헌을 주도하는 세력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 헌법의 서문을 고치게 두는 것은 국가의 영혼을 그들에게 양도하는 것과 다름없다.
셋째, 작금에 벌어지는 노골적인 헌법 파괴 행위가 이 개헌 논의의 진정성을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삼권 분립을 무너뜨리고, 사법권을 침해하며,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되려는 위헌적 시도를 일상화하는 자들이 5.18을 내세워 헌법을 고치려 하는 것은 민주화 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자신들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일이다.
나는 5.18을 사랑한다. 21살의 내 뜨거웠던 5.18이 특정 정치 세력의 방패가 되거나, 시공간의 제약 속에 갇힌 낡은 기록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5.18은 대한민국의 영원한 자유를 밝히는 승화된 정신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Opinion &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개헌’ 주장 전에 있는 헌법이나 파괴하지 말아야 (0) | 2026.05.09 |
|---|---|
| 원하는 증언 안 한다고 31명 고발, 권력의 對국민 폭력 (0) | 2026.05.09 |
| 세계화 저문 자리에 남은 건 '공급망 혈전' (0) | 2026.05.07 |
| 아이언돔 받은 UAE의 OPEC 탈퇴 (0) | 2026.05.07 |
| '악화일로' 수도권 전세난…부동산 정책 중간점검 할 때 (0) | 2026.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