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2026.05.18.

정영효 경제부 차장
‘위대한 개츠비 곡선’은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짓는 현상을 통계로 입증한 지표다. 마일스 코랙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국가별 소득불평등과 세대 간 계층 이동성의 관계를 연구해왔다. 소득불평등도가 높을수록 계층 이동성이 떨어지는 뚜렷한 상관관계 곡선이 그려졌다. 2012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인 앨런 크루거 프린스턴대 교수가 이 곡선에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제목 <위대한 개츠비>를 이름으로 붙이면서 유명해졌다. 당시 한국은 개츠비 곡선에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코랙 교수가 발표한 새 개츠비 곡선에 25개 조사 대상국 중 여섯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계층 이동성 떨어지는 한국
새 위대한 개츠비 곡선에서 코랙 교수가 인용한 25개국 통계는 2018년 기준이다. 코랙 교수에게 8년이 지난 2026년 한국의 위치가 더 우상향(부모의 경제력이 자녀 미래에 미칠 가능성이 큼)했을 가능성을 이메일로 문의했다. 그는 한국을 특정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세대 간 경제적 이동성(IGM) 둔화는 고소득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그가 “한국 상황을 참고하라”며 보내준 세계은행(WB)의 ‘공정한 진보? 전 세계 세대 간 경제적 이동성’(2018년) 보고서는 1980년대생 세대(코호트)가 부모 소득 분포에 따라 2006년 이후 어떤 경제적 지위에 도달했는지를 추적한 결과물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고소득 국가군의 특권 지속률은 43%였다. 경제력 상위 25% 부모의 자녀가 성인이 됐을 때 상위 25%에 진입할 확률이 43%라는 뜻이다. 반면 경제력 하위 50%인 부모의 자녀가 상위 25%에 진입할 확률은 16%에 그쳤다.
과점 체제를 형성한 기업이 성과를 독식하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이런 경향은 더욱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 연간 28조원을 사교육에 쓰는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하면 다음번 위대한 개츠비 곡선에서 한국 위치가 더욱 우상향할 것임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지난해 10월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소득 이동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소득 이동성은 2017~2018년 35.8%에서 2022~2023년 34.1%로 떨어졌다.
AI 시대 소외자 배려해야
영업이익 15%의 상한 없는 성과급을 요구하며 파업을 예고한 삼성전자 노동조합은 AI 특수 혜택을 받은 K자형 성장의 승자들이다. 노무 전문가들은 삼성전자 노조원이 아무리 불만족스러운 협상 결과를 받아 들더라도 앞으로 수년간 수십억원의 성과급을 손에 쥘 것으로 예상한다. 반도체 초호황이 짧게 끝나도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파이어족’(조기 은퇴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선진국의 특권 지속률을 감안할 때 그들의 자녀도 끝내 상류사회 진입에 실패한 개츠비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 노조에 사회적 책임을 생각해 달라는 요구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AI 시대 승자라면 경쟁사보다 많은 성과급을 고집하기 전에 이 시대 소외자도 생각해줬으면 한다. 경력직만 원하는 시대에 취업 시장에 나오는 바람에 일 경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청년 비취업자가 지난 4월 말 기준 56.3%에 달한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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