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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조선·방산도 ‘N% 성과급’ 요구…업계 “진짜 갈등 이제 시작”

dalmasian 2026. 5. 21. 12:03

2026.05.21.
[삼성전자 파업 직전 유보]
카카오 5개 법인 ‘파업 찬성’ 가결… HD현대重 노조 “영업익 30% 배분”
현대차-삼바-LG유플 등도 요구
“기업 R&D 투자 적기 놓칠수 있어”… “노조 소송 남발될 가능성” 지적도

카카오 노조 “성과평가 투명하게”


카카오 노조 조합원들이 20일 경기 성남시 판교역광장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성과평가 투명하게’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10% 성과급 분배 고정화 이후 카카오를 비롯해 삼성전자, HD현대중공업,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영업이익 배분 요구에 나서는 노조가 늘고 있다. 성남=뉴시스
지난해 12월부터 이어진 삼성전자 노사의 임금협상이 정부 중재를 거쳐 5개월 만에 잠정 합의에 도달했다. 지난 두 달 동안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웠던 삼성전자 노사 성과급 갈등이 일단락됐지만 한국 산업계는 이번 사태로 적지 않은 생채기를 입었다. 완성차 업계와 정보기술(IT), 바이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노조처럼 이익의 일정 비율을 ‘나눠 갖자’고 요구하는 노조가 늘었다. 반도체 협력사 직원들은 원청 회사를 대상으로 성과 분배를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향후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산업계에 퍼지는 ‘성과급 청구서’


삼성전자 노사는 20일 줄다리기 논의 끝에 잠정 합의안을 내놨다. 아직 공동투쟁본부 노조원들의 찬반투표가 남았지만, 파업 현실화와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을 내심 우려하던 조합원들 역시 해당 안을 받아들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16일 본교섭 시작 이후 지지부진했던 삼성전자 노사의 임금교섭이 1차 종료된 셈이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진정한 갈등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간 노사 임금협상의 ‘덤’으로 논의됐던 성과급이 이제는 급여에 우선하는 노사 교섭의 주요 의제로 떠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미 삼성전자 노조가 협상 막판까지 관철을 고수한 ‘영업이익에 연동한 성과급’ 배분 요구는 반도체 업계를 넘어 IT, 조선, 방산, 바이오 등 국가 핵심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날 카카오 5개 법인(카카오, 카카오페이,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디케이테크인, 엑스엘게임즈)에서 진행한 파업 투표가 모두 찬성으로 가결됐다. 공정한 성과 보상과 이익 분배가 핵심 요구 사안이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 재원으로 투입할 것을 구체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노조 요구안을 지난해 카카오 영업이익 기준으로 환산하면 13∼15%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중공업 통합 노조는 영업이익 최소 30% 성과 배분 등을 골자로 한 임금인상 요구안을 작성했다. 이 밖에 현대자동차, 삼성바이오로직스, LG유플러스 등의 노조가 유사한 요구를 들고 나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HD현대일렉트릭 노조처럼 ‘성과급의 상한 폐지’를 주장하는 노조도 늘고 있다.

이에 한국 주력 제조업이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부담으로 연구개발(R&D) 투자의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매년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고정적으로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관행이 제도로 자리 잡으면 향후 법원에서 성과급의 ‘임금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경우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산정되는 퇴직금을 둘러싼 분쟁이 늘어날 소지가 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성과급이 제도화될수록 ‘계속성’과 ‘정기성’, ‘회사의 지급 의무’ 등 임금의 조건을 만족하게 된다”며 “임금성을 인정해 달라는 소송이 남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흔들리는 주주 자본주의”

이번 삼성전자 노사 갈등으로 주주 자본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게 됐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고정 성과급으로 달라’는 요구는 상법의 기본원칙과 기존 주주자본주의 시스템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영업이익은 매출에서 이미 직원들에게 주는 급여를 뺀 결과물이다. 영업이익에서 법인세, 이자비용 등을 뺀 재원으로 배당 등 주주환원을 하는데, 상법상 영업이익의 처분 권한은 주주에게 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업이익을 재원으로 성과급을 달라는 것은 손실 위험은 주주가 지고 근로자는 이익만 챙기겠다는 논리”라고 비판했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영업이익의 15∼30%씩 성과급으로 가져가겠다고 못을 박는 식으로 협상한다면, 영업 손실이 났을 땐 노조가 이를 책임질 거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SK하이닉스에 이어 삼성전자가 이 같은 제도를 일부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다른 기업들 역시 영업이익을 나눠 달라는 직원들의 압박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재계 1위인 삼성전자가 바꾸면 이는 한국 산업계의 새로운 기준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한국 산업계와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디스카운트’로 작용할까 우려된다”고 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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