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엄마 품 아이’도 옛말 되나

dalmasian 2026. 5. 22. 00:56

[만물상]  2026.05.19.
1970년대 초등학교 가정통신문에 지금도 기억나는 게 있다. ‘엄마는 등하교를 전후해 자녀의 식사를 거르지 않게 하라’는 내용이었다. 끼니를 잘 챙겨주라는 글귀가 왠지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최근들어 끼니 얘기와 함께 ‘엄마는’이라는 주어도 함께 떠오른다. ‘자식들 끼니 챙기는 어머니’의 모습이 점점 보기 힘들어져서 일까.

▶1997년을 기점으로 25~34세 여성 고용률이 50%를 돌파했다. 결혼 적령기 여성 둘 중 하나는 직장에 다닐 만큼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졌지만 ‘가사와 육아는 여자 몫’이란 통념을 깨는 속도는 더뎠다. 그때 취직한 여자 동창은 남자 동료들이 밥 먹듯 야근하는 걸 본 뒤 비혼을 선택했다. “회사 일과 아내·엄마 노릇을 모두 잘할 자신이 없어 하나만 잘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커리어 우먼으로 성공한 여성 중에 이런 이가 적지 않다.

▶그 친구가 지금쯤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면 그때와 다른 선택을 했을 지도 모른다. 지난해 국내 전체 육아휴직의 36%를 아빠가 냈다. 남자의 육아휴직 신청 건수도 해마다 50~60%씩 급증하는 추세라고 한다. 근무 시간을 육아에 맞춰 조정하는 탄력 근무제를 도입하고 어린 자녀를 둔 직원을 위해 직장 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출산휴가와 출산 축하금 지급도 확산하고 있다. 한 대기업 CEO는 “우수한 여성 인재를 확보하려면 모성 보호를 위한 복지 확충이 필수”라고 했다.

▶이런 변화에서 더 나아가는 통계도 발표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7년부터 3년 간격으로 ‘자녀를 엄마가 집에서 돌봐야 한다’는 데 찬성하는지 묻는데, 올해 처음으로 ‘반대한다’(34%)가 ‘찬성한다’(33%)를 앞질렀다. 18년 전 첫 조사 때는 ‘찬성’(64%)이 ‘반대’(17%)를 압도했지만 그 격차가 꾸준히 줄어왔다. 여성이 일과 가정·육아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고민하게 해선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확산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건 엄마와 자녀의 유대가 흔들릴 수는 없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정채봉 시인은 그 상실감을 동시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에 썼다. 엄마를 다시 만나면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고 했다. 세상 모든 아이는 따뜻하게 안아줄 엄마가 필요하다. 육아의 책임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변할 수 없는 진리다.

일러스트=김성규

김태훈 논설위원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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