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2026.05.20.
A 소령은 아버지도 군인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전국으로 이사 다녔다. 초등학교 4곳과 중학교 2곳을 거쳤는데 고등학교는 아버지의 전역 덕에 한 곳에서 3년을 마칠 수 있었다. 초등·중학교 친구는 거의 없고 고교 친구만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도 군인이 돼 아이들을 같은 처지로 만들었다. A 소령의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다. 1학년은 광주, 2~3학년은 계룡, 지금은 서울에서 다니고 있다. 잦은 이사를 미안해하면 오히려 아이가 아버지를 위로한다고 한다. 소령은 “그것이 더 마음 아프다”고 했다.
▶B 소령의 자녀가 최근 학교에서 친구와 싸웠다. 보통 학생이라면 화해 등 해결 노력을 할 텐데 자녀는 “아빠, 언제 이사가”라며 문제를 회피하려 했다. 군인 가족은 1~2년마다 이사를 간다. 그런데 아동기는 세상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는 시기다. 잦은 이사가 자녀의 정서적 안정에 영향을 줄까 걱정하는 군인이 적지 않다. 국가가 부르면 달려가도 자녀 입학·졸업식은 못 가는 것이 현실이다.
▶전학을 가면 지역마다, 학교마다 교과서도 다르다. 이전 학교에서 배운 걸 다시 배우거나 아예 모르는 단원인데 이미 끝난 경우도 허다하다. 최전방 등 격오지로 갈수록 학원도 없다. 내신 체계, 수행평가 기준, 학생부 등이 학교마다 다른 것은 입시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그러다 보니 자녀가 중·고교에 진학할 때 ‘이산가족’이 되거나 전역을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배우자와 떨어져 사는 군인 비율이 일반 공무원의 두 배가 넘는 30%에 육박한다는 자료도 있다.
▶국군병원 대위가 뇌출혈을 일으킨 병사를 헬기로 이송하다 추락 사고로 순직했다. 그는 당직이 아닌데도 “응급 조치를 할 수 있는 내가 함께 가겠다”며 헬기 동승을 자원했다가 변을 당했다. 당시 그에겐 생후 5개월짜리 딸이 있었다. 그 딸이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학교가 경기도 파주의 ‘한민고’다. 군인 자녀를 위한 첫 기숙형 사립고인데 70%는 군 자녀, 30%는 경기도민에서 선발한다.
▶한민고는 사교육을 거의 받지 않아도 대입 성적이 좋아 매년 2~3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그런데 올해 군 자녀 모집이 처음으로 미달됐다. 전교조·민노총 등이 요구해 온 ‘한민고 공립고 전환’ 추진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은 한민고를 ‘군 장악’ ‘군 특혜’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나라를 지키는 장교·부사관 전부가 자녀 교육에서 사실상 불이익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군 자녀 254명을 뽑는 학교 하나 그냥 두지 못하겠다고 한다.

일러스트=이철원
안용현 논설위원 ahny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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