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9.

일본 정치권엔 오랜 농담이 있다. “일본엔 스파이는 있어도 CIA는 없다”는 말이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은 군대뿐 아니라 정보기관에도 유난히 조심스러웠다. 경찰·외무성·공안조사청·방위성 등이 따로 움직였다. 총리가 모든 정보를 한 손에 쥐는 체계는 만들지 않았다. 전쟁 시기 특별고등경찰과 헌병, 국가 권력의 감시 기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본이 달라졌다. 의회가 최근 ‘국가정보국’ 설치 법안을 통과시켰다. 총리를 의장으로 하는 국가정보회의와 산하 실무조직인 국가정보국이 7월 출범할 예정이다. 규모는 우선 700명 수준이지만 향후 대외정보청 신설과 전문 인력 확대까지 예고했다. 외교·방위·공안·경찰 정보를 한데 모아 분석하는 ‘일본판 CIA’의 출범인 셈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취임 이후 일본 변화가 빨라졌다. 최근 살상무기 수출 제한을 풀었고, 자민당은 자위대 명기를 포함한 개헌 논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국가정보국 신설 역시 같은 흐름이다. 일본 정부는 AI 시대의 정보전, 경제안보 경쟁, 중국과 북한의 군사 활동 등을 이유로 든다.
지금의 국제사회는 해킹과 가짜뉴스, 기술 탈취가 국경을 넘나드는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미국 CIA와 중국 국가안전부, 러시아 정보기관들은 이미 사이버 공간에서 치열하게 맞붙고 있다. 일본도 더 이상 정보 후진국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일본 내 정보활동 종사자만 이미 3만3000명 규모라고 한다.
문제는 정보기관이 강해질수록 민주주의 역시 시험대에 오른다는 점이다. 일본 야당은 개인정보 침해와 정치적 악용 가능성을 우려하며 독립된 감찰기구 설치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보기관은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권한을 키워간다. 일본은 지금 ‘전쟁할 수 없는 나라’에서 ‘정보전까지 수행하는 정상국가’로 천천히 체질을 바꾸고 있다. 무기 수출, 정보기관, 개헌 논의가 따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한 방향이다. 동북아의 기류는 그만큼 달라지고 있다.
남혁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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