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80년대 운동권이 진짜 공부를 했다고? 웃기지 마라

dalmasian 2026. 6. 7. 23:16


(퍼온 글, Soo Joh Chae)
나는 1982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1995년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학부와 대학원, 실험조교, 시간강사 자리를 거치며 13년이 넘는 세월을 대학 캠퍼스에서 보냈다.
그 시절 대학의 공기를 그저 스치듯 맛본 게 아니라는 뜻이다.
한 학번이 들어와 구르고 졸업하는 과정, 그리고 그다음 학번이 다시 들어와 그 자리를 채우는 순환을 수없이 지켜본 증인이다.

내 전공은 물리학, 그중에서도 실험이다.
데이터를 다루는 학문을 한 사람으로서, 나는 “안다”거나 “공부했다”는 말의 자격을 대단히 엄격하게 따진다.
자기 입맛에 맞는 자료만 편식해 모으는 건 공부가 아니다.
그건 확증편향일 뿐이다.
진짜 공부를 하려면 반대되는 결과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측정되고 관찰된 숫자를 현미경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따져야 한다.
무엇보다 기존 이론에 경도된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을 가능성까지 열어 두어야 한다.

이 엄격한 기준으로 80년대 운동권을 다시 복기해 보면, 요즘 미디어와 정치권이 그들을 “책 많이 읽고 치열하게 사회와 민족을 고민한 지식인 세대”로 신화화하는 꼬락서니는 그야말로 해괴한 구라이자 역사 왜곡이다.

나는 데모에 나섰다가 경찰서 유치장까지 가 본 경험도 없다.
그 흔한 닭장차 한번 타 본 적도 없다.
그저 약간의 호기심과 어설픈 정의감에 이끌려 시위 현장 주변을 서성거리던 흔한 학생 중 하나였다.
이른바 백골단이 난입하거나 사방에서 지랄탄이 터지며 진압이 시작되면, 눈치껏 분위기를 파악하고 일찌감치 대오를 이탈해 도망치는 쪽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시대를 직접 보았다.
1986년 신림사거리에서 전방입소를 거부하며 두 학생이 산화한 사건의 충격을 기억한다.
1987년 6월항쟁으로 뒤덮인 거리의 공기도 직접 호흡했다.
도서관에 자료를 찾으러 갈 때면 학내 대자보를 샅샅이 읽는 게 일과였다.
그 시절 주사파의 바이블처럼 돌던 강철서신의 문장들도, 신기해하며 들여다보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러니 그 시대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는 것은 안다.
그 속에 진짜 고통이 있었고, 진짜 죽음이 있었다는 것도 안다.

내가 진짜 참을 수 없는 대목은 따로 있다.
바로 그들이 “공부했다”고 자랑하는 그 학문의 실체, 그리고 그들이 궁극적으로 꿈꾸었다는 사회 체계의 얄팍함이다.

내가 현장에서 목격한 운동권의 ‘공부’는 대단한 학문적 탐구가 아니었다.
금서로 유통되던 마르크스-레닌주의 경제학 책자, 출처 불명의 이념 서적 복사물, 『자본론』을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한 채 신앙처럼 떠받들며 읊조리는 문구들이 전부인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북한의 대남 방송을 불법으로 녹화하거나 받아 적은 수준 미달의 선전물이 그들의 텍스트가 되기도 했다.

특히 NL, 이른바 민족해방 계열은 점입가경이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통성은 철저히 부정하면서, 북한의 세습 독재 권력 앞에서는 ‘위수김동’, 곧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받드는 혁명전사를 자처했다.
하긴, 거물 간첩 이선실에 얽힌 전설 같은 이야기까지 운동권에서 전향한 친구에게 최근에 전해 들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나.
북한식 민족해방론과 맹목적 반미 담론이 그들의 사상을 지배했다.
그것은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검토해야 할 학문이 아니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워야 하는 사이비 종교의 경전에 가까웠다.
분석이 아니고 암기였다.
검토가 아니고 신앙이었다.

그들의 ‘투쟁’ 기억 역시 지나치게 비장하게 미화되어 있다.
백골단에게 온몸이 바스러지도록 맞아 가며 끝까지 스크럼을 짜고 싸웠고, 모진 고문을 견뎌 냈다는 식의 영웅담 말이다.
물론 실제로 붙잡혀 끔찍한 국가 폭력에 희생된 이들이 있었다.
그 사실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내가 목격한 날것의 현실은 후대에 제작된 영화 속 장면과는 딴판이었다.
백골단이 지랄탄을 터뜨리며 돌격해 들어오면, 십중팔구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기 바빴다.
대부분의 경우 진압의 목적은 시위대 해산이었기에  
맞아 가며 장렬하게 싸우는 장면은 현실보다 훨씬 과장되게 포장된 경우가 많았다.

현장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직접 본 사람의 기억과, 나중에 전설처럼 각색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의 기억이 같을 수는 없다.
내가 그 시대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심한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실의 비겁함과 혼란은 쏙 빼놓고, 오직 숭고하고 비장한 순교자적 투쟁으로만 박제해 놓았기 때문이다.

가장 구체적인 기억은 실험실에 있다.
대학원 시절, 나는 물리학과 실험 조교였다.
당시 운동권 활동을 하다 복학한 학생들의 실험 수업과 학점 평가를 맡았다.
그런데 학교 분위기는 뻔했다.
그 학생들이 실험 시간에 제대로 나타나지 않아도, 실험 기구 하나 제대로 다룰 줄 몰라도, 결과 보고서 한 장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학점을 쥐여 주어 졸업시키라는 분위기였다.

솔직히 나 역시 그때는 알량한 부채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별 저항 없이, 당연한 듯 좋은 학점을 주는 데 동참했다.
학교 측도 골치 아픈 운동권 학생들을 빨리 사회로 내보내 털어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명분은 배려였지만, 실상은 책임 회피에 가까웠다.
이런 장면을 눈앞에서 똑똑히 목격한 나 같은 사람에게 “그들은 책을 많이 읽고 치열하게 공부한 지식인 집단이었다”고 말하면, 어이가 가출할 수밖에 없다.

공부라는 단어는 그렇게 아무 데나 갖다 붙이는 게 아니다.
자기 신념에 부합하는 책 몇 권을 경전처럼 모시고 반복해 외우는 것은 공부가 아니다.
그건 세뇌에 가깝다.
진짜 공부를 하려면 내 생각과 반대되는 정교한 주장도 읽어야 한다.
가차 없는 현실의 통계와 숫자도 직시해야 한다.
내가 믿는 이론이 현실 앞에서 깨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내가 본 운동권 상당수는 공부를 한 것이 아니었다.
이념을 뇌 속에 새겼을 뿐이다.
토론을 한 것이 아니라 구호를 복창했다.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한 것이 아니라, 진영 논리에 억지로 끼워 맞춘 도그마를 신앙처럼 받들었다.

그 신앙이 얼마나 모래성처럼 허약했는지도 나는 똑똑히 목격했다.
대학원 시절, 동구권 사회주의 진영이 연쇄적으로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캠퍼스의 공기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그토록 대단해 보이고 확고해 보이던 신념들이 철 지난 유행처럼 흔들렸다.
비겁할 만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공기가 달라졌다.
만약 그들의 사상이 치열한 사유와 깊이 있는 공부 끝에 도달한 주체적 결론이었다면, 외부 체제 하나가 무너졌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동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이성적 검증을 거친 확신이 아니었다.
단 한 번도 제대로 의심해 본 적 없는 맹목적 믿음이었다.
그래서 체제가 무너지자 사상도 함께 증발해 버린 것이다.
물론 그 시대 전체를 매도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암흑기 속에서도 진심으로 시대를 고민했던 이들이 있었다.
자신을 희생한 사람도 있었다.
부당한 폭력에 고통받은 순수한 영혼들도 분명 존재했다.
그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 정치권과 기득권 주변을 장악한 채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헌신한 지식인 세대”라며 훈장을 요구하는 운동권 무리의 포장은 철저한 사기극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렇다.
80년대 운동권 상당수는 공부를 한 것이 아니다.
이념을 외웠다.
민주주의를 깊이 사유한 것이 아니다.
자기 진영의 도그마를 신앙처럼 떠받들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그들을 민주화 주역으로 미화하는 가스라이팅을 당해 왔다.
그 결과, 그 시절의 낡아빠진 도그마에서 한 발짝도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지금도 권력의 단맛에 취해 우리 사회 위에 군림하고 있다.
그들은 진리를 추구한 순수한 지식인이 아니었다.
공부한 사람도 아니었다.
이념으로 뇌가 굳어 버린 화석에 가깝다.

그런 사람들의 과거를 숭고한 투쟁인 양 미화하는 꼴을 보고 있자면, 그 사기극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했던 한 사람으로서 역겨움을 금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