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도움'의 두 얼굴

dalmasian 2026. 6. 16. 20:19

[매경춘추] 2026.06.16.

박혜진 국립오페라단 단장

사람은 누구나 타인을 돕는다. 그러나 그 도움의 결이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도움은 따뜻하게 오래 남고, 어떤 도움은 오히려 마음에 불편한 흔적을 남긴다. 그 차이는 결국 '대가'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다. 보상을 염두에 둔 선의는 거래에 가깝고, 거래는 관계를 얕게 만든다. 진정성은 계산이 개입되는 순간 희미해진다.

오페라의 세계는 이러한 인간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예술이다. 무대 위 인물들은 사랑을 말하면서도 권력을 원하고, 희생을 이야기하면서도 대가를 기대한다. 그 결과는 대개 비극으로 치닫는다. 베르디의 '리골레토'를 떠올려보자. 궁정 광대 리골레토는 딸 질다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그가 속한 세계는 이미 이해관계와 욕망으로 뒤틀려 있다. 누군가를 돕는 행위조차 권력과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 소비되는 공간에서, 순수한 사랑은 끝내 비극으로 귀결된다.

푸치니의 '라보엠' 또한 다르지 않다. 로돌포와 미미의 사랑은 가난 속에서도 빛나지만, 그 주변 인물들의 관계에는 미묘한 계산이 스며 있다. 도움과 연대가 오가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각자의 생존과 욕망이 얽혀 있다. 결국 진정한 헌신은 오히려 가장 연약한 존재에게서 드러난다. 아무런 보상도 기대하지 않는 사랑만이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을 지탱한다.

흥미로운 점은 관객이 감동하는 순간 역시 바로 그 '무조건성'에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장면, 아무런 대가 없이 타인을 품는 선택은 시대와 문화를 넘어 공감을 이끌어낸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계산된 선의는 오래가지 못하지만, 순수한 마음은 시간을 견딘다는 것을.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오히려 오페라보다 더 복잡하다. 도움조차 이미지가 되고, 선행은 기록되고 공유되며, 때로는 평가의 대상이 된다. 기업의 사회공헌, 개인의 기부, 조직 내 협력까지도 '보이지 않는 보상'을 전제로 움직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모든 보상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상이 목적이 되는 순간, 행위의 본질은 바뀐다. 그것은 더 이상 '도움'이 아니라 '투자'에 가깝다.

문화예술 역시 예외가 아니다. 후원과 지원, 협력과 연대는 필수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예술의 순수성이 흔들릴 때 우리는 쉽게 알아차린다. 관객은 정직하다. 진심으로 만들어진 무대와 그렇지 않은 무대를 구분해낸다. 결국 예술이 살아남는 힘은 계산이 아닌 진정성에서 비롯된다.

타인을 돕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손을 내미는가. 인정인가, 보상인가, 아니면 그 자체로서의 의미인가. 오페라는 끊임없이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무대 밖 우리의 삶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진정한 도움은 조용하다. 드러나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고, 보답이 없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마음이 쌓일 때 공동체는 비로소 단단해진다. 오페라가 수백 년 동안 사랑받아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의 가장 순수한 감정이야말로, 어떤 시대에도 가장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박혜진 국립오페라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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