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새로운 시작 위한 연단 코스, 인생 광야

dalmasian 2026. 6. 21. 06:44

[목양실에서]  2026.06.20.

게티이미지뱅크

‘광야(사막)’라는 단어를 들으면 으레 메마르고 척박한 불모지, 뙤약볕만 내리쬐는 고독한 땅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경 속 광야의 실제 모습은 우리의 짐작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곳에도 비가 내리는 시기가 있고, 생명수를 품은 오아시스가 존재하며 양 떼를 칠 수 있는 초원과 숲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죽음의 땅이 아니라 생명이 역동하고 삶이 이어지는 공간입니다.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팍팍한 현실과 참 많이 닮아 있는 이 광야는 성경 속 인물들에게도 늘 삶의 중요한 변곡점이 되어왔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광야는 빼놓을 수 없는 무대입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는 그 자체가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들은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광야에 머물며 430년간 뼛속 깊이 스며든 노예근성을 벗어내고, 불평과 원망을 내려놓는 혹독한 연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광야는 그들이 비로소 절대적인 사랑을 깨닫고 단단한 내면을 가진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는 훈련장이었던 셈입니다.

예수님에게도 광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주리신 뒤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라(물질),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명예와 인기), 내게 절하면 천하만국을 주겠다(고난 없는 권력). 이 시험은 오늘날 우리 인간이 행복의 조건이라 믿고 끊임없이 좇는 것들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상의 조건에 대한 집착이 결코 참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음을, 눈에 보이는 화려함보다 진리와 말씀 안에 머무는 것이 삶의 최우선임을 온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도자로 꼽히는 사도 바울 역시 이 광야의 시간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극적인 회심 이후 그는 곧장 아라비아 사막으로 들어가 3년이라는 긴 침묵의 시간을 보냅니다. 자신이 쥐고 있던 얕은 지식과 껍데기를 철저히 깨뜨리고, 묵상과 교제를 통해 온전한 사명자 ‘바울’로 새롭게 빚어진 갱신의 공간이 바로 광야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세상 역시 종종 광야에 비유되곤 합니다. 치열한 경쟁, 깊은 고독, 척박한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쉼 없이 메마름을 느낍니다. 그러나 앞선 역사가 말해주듯, 광야는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오히려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코스입니다.

그러니 지금 걷고 있는 삶의 궤적이 거칠고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 광야의 시간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고난의 끝자락이 아니라 내면을 단단하게 연단하고 삶의 진정한 목적을 발견하게 하려는 새로운 시작점임을.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기보다 나만의 고귀한 사명을 깨닫고 묵묵히 걸어갈 때, 우리는 이 메마른 광야 한가운데서도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오아시스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김만준 목사(덕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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