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2026.06.23.
취해서 돈 풀지 마라
성장률 1~2% 시대의 빚은
청년세대가 갚아야 한다
호시절에 부채부터 줄이자
그것이 서민을 보호하고
청년을 지키는 길이다

‘2026 대한민국 상생 채용박람회’를 찾은 한 구직자가 구두 뒤축에 발뒤꿈치가 쓸리면서 생긴 상처를 휴지로 감싼 채 면접에 임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청년층 실업률은 7.4%를 기록하면서 1분기 기준으로 코로나 시기였던 2021년(9.9%)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았다. /장경식 기자
나라 곳간이 넘칠 것이라고 한다. 반도체가 기록적인 세금 수입을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 강의실의 20대들은 이 소식 앞에서 좀처럼 웃지 않는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고민은 ‘생존’ 그 자체다. 양질의 일자리는 바늘구멍 같고, 내 집 마련은 머나먼 얘기다. 당장 월세가 올라 방을 옮겨야 한다는 하소연이 이들의 시대정신이다.
경제학자 입장에서는 이 ‘낭보’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이 돈은 나라의 ‘월급’이 아니라, 반도체가 벌어다 준 ‘성과급’에 불과하다. 반도체 수퍼사이클이 안겨준 일시적 보너스다. 그런데 벌써 정치권에서는 이 돈을 어디에 쓸지 분주히 움직인다.
초과 세수는 정부가 잘 벌어서 생긴 게 아니다. 국민과 기업이 예상보다 세금을 더 낸 결과이고, 뒤집어 보면 정부의 세수 예측이 크게 빗나간 것이다. 초과 세수가 생겼다고 곧바로 새 지출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본예산 기준으로 우리 세수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2021년과 2022년에는 본예산보다 각각 61조원, 53조원이 더 걷혔지만, 2023년에는 56조원, 2024년에는 30조원 이상 덜 걷혔다. 불과 몇 해 사이에 수십조 원의 세수 오차가 반복됐다는 사실은 이 돈을 항구적 재원처럼 다뤄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문제는 씀씀이다. 성과급으로 생활비를 늘리면 다음 해부터는 줄이기 어렵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한번 시작된 사업과 복지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일시적 세수는 사라지는데 지출은 남아 결국 적자와 국채 발행이 뒤따른다. 그 빚은 결국 다음 세대가 떠안게 된다.
이 호황은 이미 경제 안에 스며들어 있다. 수출 대금과 기업 이익, 막대한 성과급과 주가를 타고 민간 구매력이 커지는 중이다. 올 1분기 실질 GDP는 3.8% 늘어났지만, 국가 전체 구매력을 보여주는 실질 GNI는 13.2%나 뛰었다. 여기에 정부가 돈을 더 얹으면 불난 데 기름을 붓는 격이다. 그 결과는 높은 물가와 금리로 돌아온다.
물가는 가장 역진적인 세금이다. 물가와 금리가 오르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사람은 호황에서 소외된 이들이다. 월세 사는 청년, 빚진 자영업자와 같이 K자 성장의 가파른 내리막에서 버티는 사람들이다. 미국도 물가 때문에 금리를 쉽게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때 우리만 돈을 풀면 금리 부담은 더 오래간다.
물론 경기가 꺼질 때는 재정이 앞장서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다. 호황의 과실이 이미 민간으로 흘러들고 있다. 새 기금을 만들어 미래에 투자하자는 구상도 나온다. 청년 일자리와 새로운 성장 동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언제 끊길지 모르는 성과급을 믿고 고정 지출을 늘릴 수는 없다.
정부가 유망 산업을 ‘찍어서’ 키우는 방식도 문제다. 참여 정부부터 윤석열 정부까지, 모든 정부가 ‘미래 성장 동력’ 명단을 만들고 막대한 예산을 부었다. 그러나 지능형 로봇도, 바이오도, 차세대 반도체도 정부가 바뀔 때마다 다시 등장했다. 성과가 일부 있었지만, 정부가 ‘승부처’를 미리 짚는 일의 한계는 반복됐다.
1년 앞 세수도 수십조 원씩 빗나갈 만큼 불확실성이 큰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10년 뒤 ‘승부처’를 정확히 골라낼 수 있을까. 초과 세수를 또 다른 복권 자금처럼 사용하는 것보다는 시장과 제도를 정비해 민간이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돕는 편이 낫다.
불확실한 ‘미래 산업’을 점치는 사이, 우리 앞에는 고령화라는 확실한 청구서가 날아들고 있다. 정부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현 제도가 유지될 경우 국가채무비율은 2025년 GDP 대비 49.1%에서 2065년 156.3%로 급증한다. 가장 큰 원인은 빠르게 늙어가는 인구다.
빚을 갚기 가장 좋은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좋은 시절에 부채를 줄여야, 한꺼번에 돈 쓸 일이 몰릴 때 더 큰 부담을 피할 수 있다. 청년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늘의 가난만이 아니다. 연금이 바닥나고 늘어난 복지와 나랏빚이 결국 자기 세금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더 크다. 성장률 5% 시대의 빚은 경제가 갚아줬다. 그러나 성장률 1~2% 시대의 빚은 훨씬 무겁다. 이자율이 성장률을 넘는 순간, 빚 감축은 훨씬 어려워진다.
부채 축소가 약자를 보호하는 길이다. 이 돈을 함부로 풀지 않는 것은 인플레와 고금리에 먼저 노출되는 서민을 지키는 일이고, 빚을 줄이는 것은 그 청구서를 떠안을 청년을 지키는 일이다. 현재 정부는 ‘어디에 쓸까’를 묻는다. 그러나 지금 물어야 할 것은 ‘왜 쓰지 말아야 하는가’다. 잔치는 기성세대가 벌이고, 청구서는 미래 세대가 짊어지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이윤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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