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또 속으면 국민이 문제다

dalmasian 2026. 7. 8. 07:45

[선우정 칼럼]  2026.07.08.
만성적 공급 부족 부동산 시장에서
세금은 약자에게 귀속
‘찐부자' 한성숙 총리가 교과서적 실천가다
증세 또 꺼내든 정부 정말 마귀에 홀린 듯

한성숙 국무총리(앞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지난 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일대 원룸 밀집지역을 점검하고 있다. /뉴시스

‘찐부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부동산과 금융 자산을 치우침 없이 많이 가진 부자를 말한다. 아파트, 단독주택, 상가, 토지, 예금, 채권, 주식. 여기에 연봉처럼 안정적인 현금 흐름까지 있으면 완벽하다.

한성숙 총리는 전형적인 찐부자다. 지난 3월 신고한 재산을 보면 아파트, 단독주택, 상가, 토지 등 부동산 자산이 고르게 100억원. 예금, 채권, 주식 등 금융 자산도 고르게 110억원 정도였다. 네이버 대표이사 때 23억~34억원 수준 연봉을 받았으니 현금 흐름도 대단했다.

사람들이 찐부자를 부러워하는 것은 외부 충격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경기와 정책 리스크에 흔들리지 않는다. 금리가 올라가면 금융 자산이 늘어나 좋고, 금리가 내려가면 부동산 자산이 늘어나 좋다. 부동산 세금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쉽게 망각하는 경제 원칙이 있다. 세금을 누구에게 부과하는가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시장의 역학에 따라 타인에게 분산되기 때문이다. ‘조세 전가’ 또는 ‘조세 귀착’이라고 한다. 이 역학이 찐부자에게 가장 유리하게 작동하는 시장이 부동산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만성적 아파트 공급 부족 상태인 한국이 특히 그렇다. 이런 시장에서 세금은 아래로 고여든다.

찐부자는 세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용히 세금을 내고 기다리면 집값과 집세로 전가해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제 교과서의 조세 귀착론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 한 총리다.

한 총리가 서울 재건축 유망주 아파트를 산 시점은 2006년이다. 그 무렵부터 이재명 정부 장관이 될 때까지 집 세 채와 상가 두 채를 더 샀다. 그동안 노무현·문재인 정부가 벌인 부동산 전쟁의 타깃은 한 총리 같은 다주택자였다. 그때 나온 정책이 종합부동산세, 다주택자 중과세,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 전월세 상한제, 계약 갱신 청구권 등 무시무시한 것들이다. 사회악을 향해 융단 폭격을 가한 것이다.

한 총리는 다 이겨냈다. 공시 가격 100억원대의 4주택자라면 어림잡아 보유세가 매년 1억원이 넘었을 수 있다. 그래도 총리 임명 직전까지 집을 팔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누구 말대로 그는 마귀였기 때문일까. 당연히 아니다. 세금을 낼 돈이 있었고, 세금을 전가할 수 있었고, 나중엔 큰 이익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총리직을 위해 내다 판 송파 아파트로 그는 30억원을 벌었다고 한다. 그동안 낸 세금도 그 안에 있다. 이게 경제 원리다. 정부는 그에게 헛짓을 한 것이다.

한 총리는 많은 교훈을 국민에게 알려준다. 경제학의 원리 중 ‘사람은 경제적 유인에 반응한다’는 명제가 있다. 처벌에 따른 손실과 보상에 따른 이익이 있어야 움직인다는 것이다. 한 총리는 처벌의 무상함을 알려준다. 세금 정도는 그에게 경제적 유인이 될 수 없었다. 그를 움직인 것은 보상이다. ‘총리’란 엄청난 보상이다. 물론 아무나 이런 보상을 받을 수 없다. 한 총리의 교훈은 이렇다. 본질적으로 증세는 찐부자를 겨냥한 정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융단폭격을 실제로 얻어맞는 이들은 경계선의 사람들이다. 비싼 아파트를 가진 은퇴 노인이 대표적이다. 작년 종부세 납세자 절반 이상이 60세 이상이었다. 빚내서 산 집이 크게 오른 3040 영끌족도 보유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세금 때문에 밀려나오는 고가 매물은 대개 이 사람들 것이다. 이때 공급이 소폭 늘면서 증세는 반짝 효과를 내지만 그뿐이다.

매물 대부분은 결국 세금을 지불할 능력 있는 찐부자에게 돌아간다. 한 총리의 네 채 중 몇 채도 이런 집이었을 것이다. 비싼 집을 포기한 사람들은 다시 시장에 참여해 하위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수요자 역할로 변신한다. 이런 과정이 시장 전체에서 반복되면서 세금의 고통만 아래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래픽=정인성

이것은 경제학 원론이자 노무현 정부 이래 20년 이상 목격해온 현실이다. 그런데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집값만 오르면 만능 해결책인 양 증세 정책을 꺼낸다. 증세 부담을 가장 무겁게 짊어진 사람들이 이 정책에 박수를 치는 현상은 더 이상하다. 이번에는 훨씬 심한 광경이 추가될 듯하다. 정부의 증세 정책을 20년 이상 무용지물로 만들고 증세 정책의 무상함을 전 국민에게 알린 찐부자가 증세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의 사령탑에 오른 것이다. 이달 말 아주 센 것을 내놓는다고 한다. 이게 무슨 부조리극인가. 마귀에 홀린 듯하다.

정치에 속지 않으려면 원론에 자주 기대야 한다. 스위스 국민이 전국민 기본소득안을 76.9% 반대로 부결시킨 것은 ‘모든 선택엔 대가가 있다(공짜 점심은 없다)’는 경제 원론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정치는 이런 국민을 속일 수 없다. 그렇게 속고도 또 속으면 국민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선우정 기자 s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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