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기 칼럼] 2026.07.17.
민주·국힘, 권력투쟁 '올인'
설득과 조정 없는 대립구도 고착
국민 절반 가까이 "나는 중도"
첫번째 요구는 '경제 고도 성장'
협치 없인 고용·지역발전 불가능
이념 접고 민생 투쟁으로 승부를

이심기 수석논설위원
정치 칼럼은 거의 쓰지 않았다. 정치가 효용을 잃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말은 차고 넘친다. 삶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다. 집값도, 일자리도, 물가도 정치가 해결해주지 못했다.
생각이 바뀐 건 최근 나온 ‘2025년 사회통합실태조사’를 보고 나서다. 19세 이상 전 국민 8300명을 대상으로 한 면접 조사 결과다. 정치는 낙제점이다. 정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5.5점이었다. 국회 신뢰도는 4점 만점에 2.2점에 그쳤다. 반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 뒤 정치 전망에는 5.8점(10점 만점)을 줬다. 투표 참여의 중요도는 7점 만점에 5.9점이었다. 국민은 정치를 버리지 않았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신한 것은 정치 자체가 아니라 정치의 작동 행태였다.
지금 정치판은 오로지 권력 투쟁으로 점철됐다. 161석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부터 그렇다. 친명(친이재명)과 친청(친정청래), 다시 친청과 친석(친김민석)의 사생결단 대결이다. 정청래 전 대표와 김민석 전 총리는 서로 “자기 정치를 한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의 ‘적통’을 파헤치고 경선 규칙을 놓고 싸운다. 민생보다 당권이다. 일자리보다 충성 경쟁이다.
국민의힘도 다르지 않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당은 장동혁 대표 퇴진과 친한(친한동훈)계 징계를 놓고 다시 갈라졌다. 싸움의 메뉴만 바뀐다. 본질은 똑같다. “내 표밭이 먼저냐, 네 표밭이 먼저냐”다. 두 당 모두 보수는 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사라진 정치 격언을 되살리고 있다.
양당의 무한 대립은 수치로 나타난다. 22대 전반기 국회에서 합의 없이 일방 표결한 안건은 320건이다. 18대 44건, 19대 10건, 20대 7건, 21대 61건을 압도한다. 설득은 사라졌다. 조정도 없다. 남은 것은 밀어붙이기다.
두 거대 정당이 이념과 노선 투쟁에서 헤매고 있지만, 정작 국민은 양쪽 끝에 서 있지 않다. 절반에 가까운 43.4%가 자신을 중도로 본다. ‘매우 진보’와 ‘매우 보수’ 극단에 서 있는 비중은 다 합쳐도 9.4%다. 정치권이 키운 전쟁에 국민이 피로를 호소하는 모양새다.
국민의 요구는 뭘까. 향후 10년간 우선적으로 이뤄야 할 국가 목표로 ‘고도의 경제 성장’(42.1%)을 꼽았다. 정책 방향에서 ‘분배 중시’는 31.2%로 1년 새 5.4%포인트 줄었다. ‘성장 중시’는 30.3%로 2.8%포인트 상승했다. 둘 다 중시한다는 응답도 38.5%로 가장 많았다. 정치 소비자인 국민은 이념을 구매하지 않는다. 집값에는 공급을, 복지에는 재원을, 성장에는 자신의 몫을 요구한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독일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정의다. 영국 정치학자 버나드 크릭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권력에 참여시켜 조정하는 활동이라고 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등 메가 프로젝트에는 전력과 용수, 수도권과 지역의 이해가 얽혀 있다. 정권은 5년이지만 반도체 공장과 전력망은 다음 정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공급 부진 책임을 서울시에 물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충돌을 피하려고 정책 건의 문서만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했다. 국무회의 발언권도 얻지 못했다.
정부가 야심 차게 내건 ‘345 경제성장전략’은 정부·여당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성장률 3%, 수출 4강, 소득 5만달러’는 야당과 기업, 노사와 지역사회가 움직이지 않으면 종이 위의 숫자로 끝난다. 이명박 정부의 ‘747’(7% 성장, 4만달러, 7대 강국)처럼 비웃음만 남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정치가 “더 잘하기 경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싸우더라도 누가 집을 더 빨리 짓고, 투자를 더 오래 이어가며, 청년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지를 놓고 싸워야 한다.
반면교사가 있다. 영국 보수당은 극우 정당 ‘리폼 UK(Reform UK)’를 흉내 내다가 2024년 총선에 패배해 권력을 내줬다. 노동당은 포퓰리즘을 좇다가 녹색당 등에 지지층을 빼앗겼다. 정당에는 저마다 비교우위가 있다. 보수는 시장과 성장, 재정과 안보에서 신뢰를 쌓을 때 경쟁력이 생긴다. 진보는 사회 안전망과 공공서비스, 기회 확대에서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국민은 정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삶을 바꾸지 못하는 정치를 심판할 뿐이다. 지금 정치는 효용을 잃고, 자신의 무가치함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이심기 수석논설위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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