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아현의 젠더리포트] 2026.08.04.
혼인신고 때만 가능했던 '모성 승계'…정부, 출생신고 때 선택하도록 개선 추진
성평등 취지 공감대 속 "가족 갈등 줄일 완충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photo 게티이미지
지난해 결혼을 준비하던 김달래(30대·가명)씨는 혼인신고서 앞에서 잠깐 망설였다. '자녀가 태어나면 어머니 성(姓)과 본(本)을 따르게 하겠느냐'는 항목이었다. 김씨는 "여자가 열 달 몸에 품고 목숨 걸고 낳는데,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마음으로 '예'에 체크하고 서류를 제출했다. 그런데 결혼 1년 반이 지난 지금, 김씨는 이 사실을 어떻게 시댁에 알려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다. "친정 부모님도 '왜 그런 결정을 했느냐'고 혼내시더라고요. 시집살이를 시키는 시댁은 아니지만, 어떻게 알려야 할지 걱정이에요." 한 번 협의서를 낸 뒤 다시 아버지 성으로 바꾸려면 법원에 서류를 내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 그를 더 조급하게 만들고 있었다.
민법 제781조 제1항, 이른바 '부성(父姓)우선주의' 폐지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성평등가족부는 지난 6월 9일 '제5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6~2030)'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사회 변화를 반영해 자녀의 성(姓) 유지, 결정방식 개선방안을 검토한다는 내용이 이 계획에 담겼다. 앞으로 국회 입법을 거치면 부모는 혼인신고 시점이 아니라 자녀 출생신고 때 협의를 통해 아버지 성 또는 어머니 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혼인신고 당시 미리 협의해두지 않으면 자녀는 자동으로 아버지의 성을 따라야 했다. 2008년 호주제 폐지로 '부성 강제주의'는 사라졌지만, 예외적으로만 모성 승계를 허용하는 '부성 우선주의'는 여전히 남아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법원행정처 통계에 따르면, 혼인신고 시 자녀가 어머니 성을 따르도록 신청한 건수는 2017년 198건에서 2021년 612건으로 3배 넘게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연 20만건에 육박하던 전체 혼인 건수와 비교하면, 이 제도를 실제로 활용한 부부는 여전히 극소수에 머문다. 혼인신고부터 출생신고까지 이어지는 시간적 제약과 복잡한 절차가 걸림돌로 작용해왔다는 게 성평등가족부의 설명이다. 다만 구체적인 개선 방향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가족관계등록과 친족관계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어 종합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호주제 폐지 후에도 '성씨' 불평등
호주제라는 큰 틀을 걷어낸 뒤에도 성씨를 둘러싼 불평등은 국제사회의 지적을 받을 만큼 남아 있었다.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된 뒤에도 부성우선주의가 남아 있었고,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1년 심의에서도 이 문제를 다시 짚었다. 한국 정부가 협약 제16조 제1항 '가족성에 대한 남녀 동등권 조항'을 유보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민법 제781조 개정을 권고한 것이다.
방향성 자체에는 이견이 크지 않다. 성별에 따라 성씨가 자동으로 정해지는 방식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데는 여야,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전문가들은 '문제는 속도와 완충장치'라고 꼬집었다. 손숙미 전 인구보건복지협회장(전 국회의원)은 "지금의 부성우선주의 폐지 논의는 '책임은 가부장제식, 권리는 서구식 평등'이라는 비대칭 구조를 그대로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은 여전히 주거·부양 등 경제적 책임과 병역 부담을 지면서도, 성씨라는 상징적 권리는 평등 논리로 잃게 되는 데서 박탈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결정 시점을 문제삼았다. 출산 직후는 아내에 대한 부채감으로 남편이 심리적으로 가장 취약해지는 시점인데, 이때 "내가 고생해서 낳았으니 내 성을 주는 것이 평등"이라는 논리로 성씨를 요구받으면 남편은 반박하기 어려운 위치에 몰려 사실상 떠밀리듯 동의하게 된다는 것이다. 손 전 회장은 "이런 합의가 진정한 자발적 합의라기보다 심리적으로 강요된 동의에 가깝다"며 "훗날 잠재적 이혼 사유로 작용할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관행 및 제도로서의 부성주의에 관한 법사회학적 연구'(김선화·2025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사회학 학위논문)'도 성씨 자체를 사회구조의 문제로 본다. "성본(姓本)이 형식적 기호를 넘어 가족정체성과 젠더권력의 표지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어느 쪽 성을 따르느냐는 단순한 서류 문제가 아니라, 그 집안에서 누구의 권위가 더 앞서는지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상징이 된다는 뜻이다. 법이 성씨를 선택할 자유를 준다 해도, 그 선택을 시댁과 친정 사이에서 실제로 밀어붙이고 감당해야 하는 몫은 결국 부부 개인에게 돌아간다. 김씨가 여전히 시댁에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못 정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양자택일 대신 중간 지점 택한 선진국
완충장치는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까. 해외 사례를 보면 답은 대체로 중간 지점에 있다. 엄마 성을 아예 안 쓰거나, 아빠 성을 완전히 대체하거나 하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그 사이 어딘가에 부부가 다투지 않고 넘어갈 길을 만들어준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영미권은 아버지 성을 유지하되 어머니 성을 미들네임으로 병기한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로댐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외동딸인 첼시 로댐 클린턴처럼, 성은 아빠 것(클린턴)을 따르되 이름 중간에 엄마의 원래 성(로댐)을 넣어 양가의 정체성을 함께 살리는 식이다. 프랑스는 2005년 부성원칙을 폐지하고 하이픈으로 양쪽 성을 병기하는 복합성을 허용해, 어느 한쪽이 완전히 지워지는 대신 대등하게 결합하는 절충안을 제도화했다.
부부동성제를 유지하는 일본에서도 처가 성을 따르는 예외(4~5%)가 자연스럽게 용인된다. 아들이 없거나 가업을 물려받을 후계자가 마땅치 않은 집안에서, 사위가 아내 쪽 성으로 바꾸고 그 집안의 재산과 사업, 지위를 물려받는 데릴사위제가 그 배경이다. 남편 입장에서는 자기 성을 포기하는 대신 회사나 재산을 얻는 구체적 대가가 주어지는 셈이라, 성을 '빼앗겼다'는 상실감보다 '거래로 얻었다'는 실리가 앞선다. 그래서 감정적 소모전으로 번지지 않는다.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변호사 모임'의 방민우 변호사(법무법인 민)는 "부성우선주의 폐지의 명분이 옳다는 것과, 그 시행이 준비돼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방 변호사는 "사법적·행정적 완충장치 없이 성급하게 제도가 시행될 경우, 그 부담은 고스란히 김씨와 같은 개별 가정의 갈등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며 "성씨를 둘러싼 갈등이 부부 사이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양가 어른들 사이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고, 정작 그 결정의 주인공이어야 할 아이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다"고 밝혔다.
권아현 기자 zinc@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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