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어찌하여 헛된 일을 꾸미는가?

dalmasian 2026. 8. 8. 19:17

(퍼온 글, 김지철)
하나님의 물음 앞에 선 권력자들 - “어찌하여 헛된 일을 꾸미는가?” -

말씀: 시편 2편 1–6절(맥체인 성경읽기, 8월 4일, 화)

독재자는 질문을 극도로 싫어한다. 백성에게는 맹목적인 충성을 요구하지만, 자신을 향한 질문은 견디지 못한다.
“왜 억압하는가? 왜 진실의 입을 막는가?”
이 작은 질문 하나가 시작되는 순간, 절대 권력의 신화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편 2편은 세상의 오만한 권력자들을 하나님의 심문대 앞에 세운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시 2:1)

이것은 시인의 입을 통해 선포되는, 권력의 기만을 폭로하는 우주적 심문이다.

1. “어찌하여?”: 권력의 거짓을 묻다

세상의 군왕들과 통치자들은 하나님과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맨 것”과 “결박”으로 매도하며 끊어내자가 선동한다(2-3절). 하나님을 밀어낸 자리는 결코 진공상태로 남지 않는다. 권력자가 스스로 신의 자리를 찬탈하여 국가 우상숭배를 만들어낸다.
“어찌하여?”는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다. 그들의 반역이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헛된 것인지를 고발하는 탄식이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말을 진리로 만들며, 백성의 생명과 자유까지 소유하려는 우상숭배다.
하나님은 심문하신다.
“누가 너에게 사람을 억압할 권리를 주었는가? 어찌하여 백성의 피눈물 위에 너의 화려한 왕좌를 세우는가?”

2.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신다”: 절대 권력의 허망함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시 2:4)
땅의 왕들은 군대와 감옥으로 공포를 조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웃음은 스스로를 영원하다고 착각하는 유한한 권력을 향한 엄정한 “심판의 비웃음”이다. 독재자는 역사책의 기록을 지우고 언론을 통제할 수 있지만, 하늘에 기록된 하나님의 기억은 결코 지울 수 없다. 때로는 불의한 권력이 너무 오래 지속되어 하나님의 침묵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하늘의 비웃음은 불의한 권력을 결코 최종적인 승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주권 선언이다.

3. “지혜를 얻으라”: 심판 전에 열어 두신 회개의 문

시편은 심판의 선언으로만 끝나지 않고 은혜의 문을 연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시 2:10)
권력자의 참된 회개는 억압을 멈추고, 갇힌 사람을 풀어 주며, 빼앗은 자유를 돌려주고, 스스로 신격화하는 자리에서 내려오는 구체적인 행동이다.

신약은 시편 2편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한다(행 4:25-28; 13:33; 히 1:5). 그 분은 세상의 독재자들과 완벽히 대척점에 서 계신 분이시다. 세상의 왕들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피를 흘리지만,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피를 흘리셨다. 그분은 폭력으로 굴복시키는 대신, 온전한 “자기 비움”과 “섬김”으로 진정한 생명의 나라를 세우셨다.

마무리하며
오늘도 하나님의 물음은 계속된다.
이 물음 앞에는 북한의 권력자도, 세계의 패권주의자들도 예외 없이 서야 한다. 그러나 이 질문은 또한 우리 자신을 향한다. 가정과 교회와 직장에서 우리는 조그만 권력을 휘두르며 질문을 막고 다른 사람을 침묵시키는 “작은 독재자”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시편 2편은 인간의 오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내가 나의 왕을 시온에 세웠다.”(시 1:6) 그 왕은 폭력으로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십자가로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 앞에서만 권력은 섬김이 되고, 정의는 사랑이 되며, 인간은 비로소 사람다워진다.

기도문

정의의 하나님,
권력을 우상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교만을 꺾어주소서.
억눌린 이들의 신음과 눈물을 기억하여 주소서.

세상의 독재자들이 회개하고 폭력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소서.
한반도와 온 세계 위에 자유와 정의와 평화가 임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