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각] 2026.04.24.

“문은 열렸는데 아무도 통과하지 못했다.” 2025년 2월 시행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 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첨생법·재생의료법)’ 개정안의 1년 성적표를 요약하면 이렇다.
개정의 핵심인 ‘치료 제도’는 연구 단계에 머물던 줄기세포·유전자 치료 기술을 환자 치료에 활용하고 비용 청구까지 가능하게 한 장치다. 하지만 실제 승인·적용 사례는 아직 단 한 건도 없다.
재생의료기관이 기업의 기술을 활용한 치료계획을 제출해 국가 심의위원회의 승인을 받는 구조다. 일부 후보물질은 임상적 유효성을 확보했음에도 아직 승인 초록불은 켜지지 않았다.
시장에선 단순 지체를 넘어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자의 질문에 연구자와 기업인들은 공통적으로 ‘심의의 불확실성’과 ‘속도’를 한계점으로 꼽았다.
심사 기준과 절차·기간이 불명확해 승인 시점을 예측하기 어렵고, 사업 전략을 세우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신청 이후 ‘보류’ 답변을 받고 심의 절차를 반복하며 결과를 기다리는 식이다.
치료 제도는 재생의료 분야 바이오벤처에겐 현금 흐름을 만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초기 수익 모델이다. 하지만 승인 시점이 불투명하다 보니 해외 진출이나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등 단기 수익 사업으로 방향을 트는 경우도 있다.
병원에서 확보한 치료 데이터가 공식 개발 과정에서 충분히 인정되지 않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첨생법 개정 취지도 이런 비효율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지만, 현장 체감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반면, 해외에선 시장이 열려 기업들의 속도전이 시작됐다.
일본은 iPSC(유도만능줄기세포) 기술을 기반으로 한 치료제를 세계 최초로 승인했다. 미국은 RMAT(첨단재생의료치료제) 제도를 통해 개발 초기부터 규제당국과 기업 간 협의를 이어가며 승인 경로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중국은 대규모 환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임상과 허가를 동시에 추진하며 재생의료 분야에서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각국이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환자 접근을 앞당기기 위해 ‘규제의 속도’를 제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해외로 향하고 있다. 안트로젠의 줄기세포 치료제 ‘알로스템’은 일본에서 정식 판매 허가를 받았고, 네이처셀은 일본 재생의료 제도를 활용해 임상과 사업화를 진행해 왔다. 최근엔 미국에서도 임상시험을 확대하고 있다. 무릎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TG-C) 사태로 국내 품목허가가 취소된 코오롱티슈진은 미국에서 TG-C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 막힌 파이프라인이 해외에서 먼저 풀리고 있다는 건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기업들이 자국 규제와 심의의 늪에 빠져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 국내 시장을 포기하는 구조가 고착되면 정작 국내 환자들은 자국 기업이 개발한 치료제를 제때 못쓰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최근 출범한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는 ‘첨단재생의료’의 규제 합리화를 우선 과제로 제시하며 심의 투명성 강화와 정보 공개 확대 등을 거론했다.
방향은 맞다. 이제 필요한 건 속도와 실행이다. 심의 기한을 명확히 하고 일정 기간 내 결론이 나오지 않을 경우 조건부 승인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연구자 임상 데이터 활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현장의 요구 반영도 논의돼야 한다.
한국 규제 당국과 심의 기구가 ‘승인 보류’를 반복하는 기저엔 신기술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는 방어적 행정도 일부 깔려 있다는 시각이 있다.
고위험·난치 질환을 주로 겨냥하는 세포·유전자 치료 분야는 환자 수가 적고 기존 치료 대안이 제한적이다. 기업과 환자 모두에게 시간이 생존과 직결돼 있다.
겉으론 규제 혁신을 외치면서 완벽한 안전성만을 전제로 제도 운영이 지속된다면, 결과적으로 국내 환자는 치료 기회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산업은 성장은커녕 고사하는 역설에 빠질 수 있다.
허지윤 기자 jjy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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