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재판 봉쇄하는 권력자의 해악

dalmasian 2026. 4. 24. 23:35

[특파원 리포트] 2026.04.23.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AP 연합뉴스

2014년 여름, 기자는 국내 언론 중 유일하게 50일간 이어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가자지구에서 취재했다. 팔레스타인 사망자만 2000명이 넘은 이스라엘의 일방적 공습을 지휘한 인물은 당시에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였다. 이스라엘 역대 최장수 총리인 그는 이후로도 안보 위협의 근본적 해결 대신, 주기적인 전쟁으로 긴장을 조장해 지지층을 결집하는 ‘잔디 깎기 전략’으로 정치적 활로를 뚫어왔다. 당시 가자지구 폭격의 반작용으로 세계가 ‘반(反)이스라엘’ 혐오 범죄로 들끓었는데, 이 비극적 패턴은 12년이 지난 지금 더 끔찍한 규모로 반복되고 있다.

이스라엘 지도부의 현실 인식은 국제 사회와 아득히 멀다. 네타냐후는 지난달 미 언론 인터뷰에서 유가 폭등에 고통받는 국제 사회의 휴전 요구에 “기름값이 일시적으로 오른다고 ‘안 돼, 하지 말자’고 하고 싶나”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 발전소 타격을 예고하며 “한 문명이 사라질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아 세계가 경악할 때, 이스라엘 당국자들은 “이란 인프라를 초토화할 전례 없는 기회의 창이 열렸다”며 반색했다고 이스라엘 언론들은 전했다.

네타냐후가 전쟁을 고집하는 이유는 개인 비리 재판 영향이 크다. 그는 억만장자들에게 고급 시가와 샴페인 등 26만달러(약 3억8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상태다. 이후 무리하게 사법부를 통제하려다 건국 이래 최대 반정부 시위에 직면했던 그는, 2023년 하마스와의 전쟁부터 최근 이란 전쟁까지 주도하며 국가 비상사태를 이유로 자신의 재판을 유예시켜 왔다. 개인의 권력 연장과 형사 처벌 회피를 위해 국가 안보를 볼모로 삼은 것이다.

네타냐후의 야욕이 남긴 청구서엔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 이후 이스라엘의 압도적 보복으로 희생된 가자지구 사망자는 7만명이 넘는다. 유럽 정치권에선 네타냐후를 히틀러에 빗대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2014년에도 이스라엘 신문들은 날마다 혐오 범죄에 시달리는 세계 각지 유대인의 피해 사례를 1면에 싣고 이를 ‘반유대주의’라고 비판했는데, 네타냐후가 자국 안보를 이유로 중동 곳곳을 잿더미로 만들 때마다 유대인을 향한 테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 여론은 악화되는 추세다. 지난해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과반이 이스라엘에 부정적 견해를 밝혔고, 청년층은 유대인을 홀로코스트의 피해자가 아닌 팔레스타인에 대한 가해자로 인식했다.

이란 전쟁의 총성이 멎으면 네타냐후의 사법 시계는 다시 돌아간다. 결국 그는 법정에 서게 될 것이다. 재판을 막으려는 집요한 욕망이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자국민을 전 세계적 혐오 범죄의 표적으로 내몰았다. 사법 책임을 피하려는 한 권력자의 무리한 사투가 얼마나 파괴적인 해악을 초래하는지 이스라엘이 증명하고 있다.

워싱턴=박국희 특파원 fresh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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