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2026.05.09.
‘미국의 代案이 중국’이란
思考의 함정을 피하려면…
‘트럼프=미국’으로 봐선 안돼
중국이 覇權國 돼
트럼프처럼 행동하면
한국이 첫 먹잇감 될 수도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경주 APEC 정상회의 기간 경북 경주박물관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메르츠 독일 총리가 후련한 말을 쏟아내는 걸 보고 저러다 탈 나지 싶었다. “미국은 전쟁 시작할 계획만 있었지, 전쟁을 끝낼 계획 없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도대체 전쟁 목적이 뭔가. 정권 교체인가, 핵 시설 파괴인가, 솔직히 말해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과 미국 국민이 모욕당하고 있는 꼴이다.”
그냥 듣고만 있을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다. “메르츠가 나를 비난했다는데 그는 정말 무능하다. 독일이 이민자 문제와 에너지 위기로 망가지는 동안 아무것도 못 했다. 그런 사람이 미국을 가르치려 드나.” “미국 국민이 모욕당했다고... 모욕당한 건 러시아에 벌벌 떨면서 미국에 안보를 구걸하는 독일이야....” 독일 주둔 미군 5000명 감축과 유럽산 자동차 추가 관세 부과를 발표했다. 메르츠가 쏟아낸 자기 말을 다시 주워 담고 있다는데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에도 메르츠 발언을 시원해하는 사람이 상당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메르츠 발언은 ‘좋은 의미의 독일식(獨逸式)’은 아니었다. 신중함을 잃고 박수 유혹에 넘어갔다.
통일 전 첫 서독 총리 아데나워는 미국 대통령과 가장 자주 정상회담을 했던 정치가였다. 아데나워는 영어가 능숙했다. 그러나 정상회담 때는 반드시 통역을 사이에 두고 대화했다. 아데나워의 영어 실력이 수준급이란 사실을 뒤늦게 안 미국 대통령이 그 이유를 물었다. “내 한마디에 나라 운명이 바뀔 수도 있는데 어떻게 서툰 영어를 쓰겠습니까. 내 말을 영어로 통역하는 시간에 다음 할 말을 준비했습니다.” 아데나워가 메르츠 발언을 들었더라면 혀를 찼을 것이다.
트럼프의 이란 전쟁에 대해선 여러 비판이 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의 꾐에 빠져 전쟁을 시작했다는 전쟁 동기(動機) 비판과 국제법과 국제 규약을 무시했다는 전쟁 수행 방식 비판 등 다양하다. 그러나 비판이 다 옳은 건 아니다. 러시아 푸틴처럼 ‘사돈 남 말하고 있네’ 비판이 그런 예(例)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4년 넘게 남의 영토를 짓밟고 주민을 살해하고 있는 푸틴은 ‘남의 나라 지도부를 제거하기 위해 국제법을 무시하는 미국의 고질적 사냥 습관’ ‘인간의 도덕성과 국제 규범을 무시한 살해 행위’라고 소리를 높였다.
중국은 ‘이란과 그 주변 국가들의 주권·안보·영토 보존은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라며 평화 애호 국가 이미지를 선전했다. 국제 항해로(航海路)인 남지나해 바위 주변을 매립해 영토로 만들고 한국 서해에 말뚝을 박는 건 중국 아닌 다른 나라가 한 짓이라는 투다. 해군력을 측정하는 주요 함정 비교에서 중국은 400척으로 미국 290척을 이미 앞질렀다. 질적(質的)으로는 아직 미국이 우위(優位)라지만 그것마저 뒤집히면 한국·일본·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의 목줄을 중국이 쥐게 된다. 현대 중국은 1949~80년까지 국경을 접한 한반도·티베트·인도·소련·베트남을 선제(先制) 공격해 전쟁을 벌인 나라다.
메르츠 독일 총리의 실수(失手)는 틀린 말을 한 게 아니라 독일의 안보 현실과 국방력(國防力)을 잘못 파악한 것이다. 독일은 러시아의 침략을 혼자 힘으로 막아낼 수 없다. 그게 극적(劇的)으로 드러난 계기가 1999년 세르비아의 인종(人種) 청소를 막기 위해 출범 이후 처음으로 NATO군(軍)을 편성해 싸웠던 코소보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미군은 정찰 위성과 통신 도감청(盜監聽)으로 폭격 목표물 설정에 필요한 정보의 99%를 제공했고 적(敵)의 동향을 그림처럼 그려 보여줬다. 독일군 지휘관은 “식사는 미군이 짓고, 독일군은 설거지를 했을 뿐”이라며 허탈해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SNS 활용률은 거의 트럼프에 버금가지 싶다. 얼마 전엔 페이스북에 남·북 경제력과 국방 예산 격차를 제시하며 ‘이런 군사력과 국력을 갖고도 ‘외국 군대’가 없으면 자주국방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굴종적(屈從的) 사고가 문제’라고 했다. 전시(戰時)작전 통제권 반환을 염두에 둔 말인 듯하다. 대통령식 계산대로라면 이란이 압도적 미군에게 어떻게 버티고 있겠는가. ‘외국 군대’-외세(外勢)-주체적(主體的) 사고라는 발상법(發想法)도 역대 대통령에겐 없던 사고방식이다. 일본 총리도, 독일 총리도 미군을 외국 군대라고 부르지 않는다.
트럼프 시대는 길어야 3년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을 완전히 동일시(同一視)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미국의 대안(代案)이 중국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대통령은 중국이 지금의 미국처럼 돼 트럼프 방식으로 인접국을 압박하면 그 첫 희생자가 한국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필요한 진정한 자주(自主) 의식은 이런 사태를 내다보고 대비하는 것이다.
강천석 기자 mngedi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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