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의 窓] 2026.05.16.

서울 포이초등 1학년 3반 어린이들이 한자 카드를 이용, 빙고 게임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카드 등 소품을 활용한 교육도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민원 처리 과정에서 불편부당한 대우 및 불친절한 사례를 신고할 수 있습니다.” 한 지자체의 홈페이지에 이런 안내문이 실렸다. ‘아주 공평해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다’는 뜻인 ‘불편부당(不偏不黨)’을 ‘불편(不便)하고 부당(不當)하다’는 뜻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누군가 지적을 한 모양인지 얼마 뒤 이 문구는 ‘민원 처리 과정에서 불편/부당한 대우…’로 바뀐 것을 볼 수 있었다.
‘나 자신을 구제하는 대출’이란 뜻으로 보이는 불법 사금융 ‘내 구제 대출’이 최근 사회 문제가 됐다. 휴대폰이나 정수기 같은 물건을 산 뒤 이를 담보로 돈을 빌리거나 현물을 되파는 수법으로 대출이 이뤄지는 것인데, 이걸 왜 터무니없이 좋은 뜻인 ‘내 구제’로 부르는 것일까? 알고 보니 ‘내구재(耐久財·오래 쓸 수 있는 재화) 대출’의 한자와 그 뜻을 몰라서 생긴 현상이었다.
한 TV 뉴스에선 이런 리포트가 나온 적도 있다. “CCTV에 촬영된 인물은 용의자와 인상착의는 물론 옷차림까지 같다고 합니다.” 인상착의(人相着衣)의 ‘착의’가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이런 표현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설욕을 씻다’란 말도 방송에서 들은 적 있다. 설욕(雪辱)의 ‘설’이 ‘씻다’는 뜻인 줄 몰랐던 것이다. 한 대학의 주간(週刊) 영자 신문이 발행 업무를 맡은 ‘주간(主幹) 교수’를 ‘Weekly Professor’로 쓴 일도 있다.
본지 사회면에 초등학생이 주로 다니던 한자 학원에 직장인이 몰려들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앞으로 입학시험을 치를 일이 거의 없을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자기 돈을 들여 한자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 필요성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한자를 모르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장애를 겪는 사회적 단계에 이르렀다는 의미가 된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일부러 불을 지른다는 뜻인 방화(放火)와 불이 나는 것을 미리 막는다는 뜻인 방화(防火)를 한글만 써서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젊은 의사들은 임신부가 진통(陣痛)을 한다고 할 때와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진통(鎭痛) 주사를 놓는다고 할 때의 ‘진통’을 헷갈려 하는 경우가 있다” “연패라고만 쓰면 계속 이겼다[連覇]는 얘긴지 계속 졌다[連敗]는 얘긴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왔다. 이제 시간이 지나 정규 과정에서 한자 교육을 받은 국민의 비율이 줄어들면서 그 ‘의사소통 불통’의 우려가 본격적으로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한자 교육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문맥을 통해 충분히 뜻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글쎄, 호부호형을 ‘呼父呼兄’이라 또박또박 쓰는 대신 그런 추측이나 유추(類推)를 권장하는 것을 과연 교육이라 할 수 있을까. 뻔한 지름길을 놔두고 모두들 굳이 멀리 에둘러 가는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이 되는 것일까.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kar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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