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3.

20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금협상을 마친 후 여명구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피플팀장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잠정 합의한에 서명한 후 손을 맞잡고 있다. 김성룡 기자
파업을 불과 1시간여 앞두고 지난 20일 삼성전자 노사가 극적으로 합의했다. 직전 닷새 넘게 이어진 조정에도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던 협상의 돌파구는 ‘성과배분 1년 적용 유예’였다. 이 막판 절충안은 직접 마지막 중재에 나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아이디어였다.
"서울역과 부산역 비유하며, 배분 설득"
22일 노동부 관계자들이 전한 협상 막전막후다. 조정 마지막 날은 사측을 설득하는 게 관건이었다. 이미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노조 측은 조정안에 동의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내가 철도청에서 일했는데 서울역과 부산역에 근무한다고 해서 성과급을 다르게 준다면 직원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게 아니냐”는 등 본인의 경험을 빗대어 말하며 사측에 ‘성과주의 원칙’을 존중하지만 직원들에 동기부여를 위해 ‘예외’를 둘 수 없겠냐고 끝까지 설득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협상 막판 성과배분 기준을 2027년부터 적용해, 올해는 반도체 부문 적자 사업부 직원도 성과급을 받도록 하는 절충안이 마련됐다. 이른바 ‘1년 적용 유예’는 노조 입장에서는 조합원 투표 가결을 유도할 수 있는 안이었다. 동시에 한시적 조치인 만큼 삼성전자 사측이 중시해 온 성과주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훼손하지 않는 해법이었다.
마지막 노사 자율 협상의 판을 다시 깐 것도 김 장관이었다. 정부는 20일 오전까지만 해도 중앙노동위원회 조정 과정에서 노사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조정은 결렬됐다.
장관 협상 난항에 "뭐 하자는 거냐"며 격앙되기도
결렬 직후 김 장관은 즉각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대통령 국정성과보고를 비롯한 예정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곧바로 노사 양측에 연락을 돌렸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낸 김 장관은 “조정은 결렬됐지만, 노사 모두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는 말을 했다. 이럴 때는 누군가 다시 판을 깔아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조정 결렬 4시간 만에 새로운 교섭 테이블이 마련됐다. 마지막 협상은 시작 직전까지 극비리에 진행됐다. 노사가 외부 시선에 대한 부담을 덜고 교섭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취재진 카메라 등에 노출되지 않도록 배려했다.
하지만 마지막 조정도 순탄치 않았다. 협상 중 김 장관은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거냐”며 격앙된 발언도 했다. 노사 간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데 대한 답답함이 터져 나온 것이다. 평소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거의 없던 김 장관의 모습에 함께 있던 공무원들도 놀랐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김 장관과 노동부 관계자들은 기다림과 설득, 대화를 이어갔고 결국 합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장관 "삼전 해결 못 하면 사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오후 경기 수원시 장안구 경기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사교섭 타결에 따른 브리핑에서 미소를 보이고 있다. 김성룡 기자.
노동부 관계자는 “노사 모두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던 만큼, 각각 고민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며 “김 장관은 부산지방노동위원회 조정위원으로도 오랜 기간 활동해 이런 과정을 잘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노동부 관계자는 “사후조정을 시작하면서 장관과 보좌진들이 ‘삼성전자 파업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사표를 쓰자’는 각오로 임했다”고 했다.
민주노총 전 위원장으로서 파업을 직접 이끌어본 경험이 노동조합과의 공감대 형성에 주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장관과 노조가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5일 평택사무소에서다. 당시에는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분위기가 무거웠지만, 김 장관은 젊은 노조위원장이 느꼈을 압박감과 파업을 앞둔 노조 내부의 고민에 공감하며 분위기를 풀어갔다.
이날 노조 정책국장이 “장관님 팬이다. 장관님이 과거 직권중재에 맞서 노동3권을 지켜낸 모범을 따라, 저희도 긴급조정에 맞서 싸우겠다”고 말하자 현장에선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이에 김 장관은 “파업권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노조의 권리다. 그런데 나도 어쩌다 장관이 되고 보니 긴급조정 권한이 있더라”고 응수했다. 현장에 있던 노동부 한 관계자는 “이때 이미 김 장관과 노동조합 사이에는 긴급조정이나 파업보다 교섭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자는 신뢰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세종=김연주·김경희 기자 kim.yeo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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