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교복에 선글라스 쓴 여학생들... 일본은 지금 자외선과 전쟁중

dalmasian 2026. 5. 24. 00:09

2026.05.23.
[특파원 리포트]

지난주 도쿄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선글라스를 산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편의점에서도 선글라스를 판매한다. 패밀리마트는 지난해 출시한 선글라스가 3주 만에 전량 매진되자, 올해는 아예 출시 시기를 3월로 앞당겼다. 집 앞 편의점에선 벌써 동이 나 구할 수 없었다.

5월의 도쿄는 일찌감치 ‘자외선과의 전쟁’이 한창이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직사광선도 문제지만, 도쿄 특유의 아스팔트와 유리 빌딩에서 반사되는 ‘데리카에시(照り返し·반사광)’가 사방에서 보행자를 괴롭힌다. 양산을 쓰거나 팔토시를 착용한 도쿄 시민들의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교복 차림에 선글라스를 낀 일본 도쿄 죠시세이가쿠인 중·고교 여학생들 /안경 브랜드 조프(Zoff)

학교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도쿄 기타구에 있는 죠시세이가쿠인(女子聖学院) 중·고교 학생들은 선글라스를 쓰고 등교한다. 단정한 교복 차림에 저마다 취향을 담은 다양한 색의 선글라스를 쓴 여학생들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학교는 지난해 10월 전국 중·고교 최초로 교복에 선글라스 착용을 공식 허용했다. 이바라키현 미쓰카이도(水海道) 고교 학생회도 최근 선글라스 착용 자유화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지진 등 자연재해에 민감한 일본은 폭염이나 자외선, 꽃가루처럼 계절이 몰고 온 일상의 위협도 국가적 재해로 인식하고 역량을 동원한다. 자연스레 기발하고 실용적인 정책이 쏟아진다. 도쿄도청은 지난달 강도 높은 ‘쿨비즈(Cool Biz)’를 선언했다. 공무원들이 정장 대신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아침 7시 조기 출근을 장려하는 폭염 대책이다. 수도 도쿄가 선제적으로 나선 만큼 전국 확산도 예상된다.

민생과 직결된 대책도 과감하다. 도쿄도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여름철 4개월간 전 도민(都民)의 수도 요금 기본료를 전액 면제한다. 에어컨 사용을 주저하다 온열 질환으로 쓰러지는 고령층을 배려한 조치다. 일본에서 ‘가장 더운 도시’로 통하는 사이타마현 구마가야시는 버스 정류장 지붕에 냉각 미스트를 설치해 기온이 28도를 넘으면 시원한 안개비를 뿌린다. 요구르트에 포함된 단백질이 체내 수분 유지에 도움을 준다며, 관내 양로원과 보육원에 무상으로 나눠주기도 한다.

‘기후 재해’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역시 매년 펄펄 끓는다. 작년에 4400명이 넘는 온열 환자가 발생했고, 지난 15일엔 서울 도심에서 벌써 첫 폭염 사망자가 나왔다. 올여름엔 예년을 웃도는 ‘역대급 무더위’가 닥친다고 한다.

일본은 수백 년간 자연재해와 싸우며 축적한 ‘방재 DNA’를 기후 위기라는 새로운 적(敵)에 발 빠르게 접목해 왔다. 노련하면서도 생활 밀착형인 이들의 대책은 한국 방재 당국과 지자체에도 참고가 되기에 충분하다. 당장 올여름 우리도 인식을 바꿔보면 어떨까. 땡볕 아래서 땀 흘리는 학생들을 위해 교복에 선글라스를 허용하는, 작지만 파격적인 시도부터 해보자. 일상의 위험을 줄이는 첫걸음이다.

도쿄=김동현 특파원 boy@chosun.com
Copyright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