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빈소 없는 장례

dalmasian 2026. 6. 2. 08:33

[만물상]  2026.06.01.

어린 시절 부친 따라 집안 어른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다. 고인의 딸도 며느리도 아닌 여인이 “아이고 아이고” 하며 서럽게 울었다. 한쪽에서 ‘곡비(哭婢)’라며 수군댔다. 통곡도 효도라던 시절, 주변 시선을 의식해 전문적으로 곡 하는 사람을 고용한 것이었다. 풍습이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한 장례식 풍경도 많다. 장례식장 문상객 상당수는 고인을 평생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다. 상주와의 ‘눈도장’이라는 목적만 남았다.

▶이 풍습을 과감히 끊어낸 사례도 있다. 세벌식 타자기를 만든 안과의사 공병우 박사의 유언은 이랬다. “내가 죽으면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고, 시신은 기증한 다음, 모든 절차가 끝난 후 죽음을 알려라.” 1995년 유족은 ‘무빈소 장례’를 치른 이틀 뒤에야 세상에 부고를 전했다. 사실 고인의 확고한 유언이 있더라도 유족이 이를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차마 빈소도 없이 보낼 수 없다는 자식의 죄책감, 불효자라 손가락질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벽을 허무는 바람은 바다 건너에도 불고 있다. 2016년 세상을 떠난 영국의 세계적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의 경우다. “어떤 장례식도, 추모식도 열지 말라”는 뜻에 따라 유족은 조문객을 받지 않았고, 고인은 뉴욕 화장장에서 수백 달러 비용으로 조용히 화장됐다. 시신을 방부 처리하고 비싼 관에 모셔 며칠간 조문(Viewing)을 받던 서구의 전통에서 보위의 ‘무빈소 장례’는 큰 화제가 됐다. 가난한 이들의 내몰린 선택이 아닌, ‘쿨한 선택’이라는 패러다임 전환 조짐도 보인다. 미국의 화장률은 요즘 60%를 넘는다.

▶최근 국내에서 문을 닫는 장례식장과 상조 회사가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변화의 이면에는 그림자도 있다. 경제적 취약 계층이 비싼 장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내몰린 영향이 크다고 한다. 인구 소멸 중인 지방의 식장들은 텅 빈 채 문을 닫는 가운데 다른 편에서 서울 대형 병원의 장례식장은 여전히 붐비고 있다.

▶‘휴일 청첩장’은 받기 싫은 초대다. 문상 역시 사람들에겐 점점 더 부담이 되고 있다. 요즘 세상에 3일장을 해야 하는지, 대형 병원이 장례식장으로 큰 돈을 버는 것이 옳은지, 빈소 밖에 늘어선 조화 행렬 등 바뀌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결혼하는 부부를 전혀 모르는데도 가야 하는 결혼식처럼, 한번 본 적도 없는 고인의 장례식에 가서 ‘연세가 어떻게 되시느냐’고 묻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빈소 없는 가족만의 장례식이 점점 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수웅 논설위원 jan1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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