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글, 김남훈)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이 광주제일고를 상대로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를 외친 지 불과 반나절 만에 온라인은 이미 처벌 릴레이에 들어갔다. 몰수패, 출전정지, 프로 드래프트 영구 배제, 야구부 해체, 교직원·학부모 처벌, 선수 신상 공개까지. 일부에서는 “인생을 실질적으로 조져야 한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허수아비를 때리는 두 가지 방식
지금 벌어지는 논의에는 명백한 허수아비가 두 개 있다.
첫째, “조직적으로 춤까지 추어가며 조롱했다”는 주장이다. 이는 사전 연습을 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사건을 더 악의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가야지 가야지’는 학원 스포츠 현장에서 선수들이 함께 쓰는 흔한 응원 패턴이다. ‘가야지 가야지 안타치고 가야지’처럼 적절한 단어를 넣어 같이 응원한다. 기존 응원에 선창을 주도하던 2학년이 “스타벅스”를 넣은 것일 뿐이다. 이를 근거로 야구부 전체를 “극우 세뇌”이자 “일베”로 규정하는 것은 과도한 비약이다.
둘째,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팀 전체에 6개월 출전정지를 먼저 내리고, 이후에 선수와 코치진에 대한 추가 조사를 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이는 절차적으로 뒤집힌 방식이다. 먼저 사실관계를 제대로 조사하고, 누가 주도했고 누가 가담했으며 누가 관여하지 않았는지를 밝힌 뒤에 팀 제재를 결정하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 정치권력의 눈에 나지 않기 위해 성급하게 팀 전체를 징계부터 때리고, 나중에 개인을 조사하겠다고 하는 모양새다.
6개월 출전정지가 실제로 가져올 피해
협회가 내린 팀 6개월 전국 대회 출전정지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비교할 사례가 없다. 고교 야구에서 청룡기, 황금사자기 등 주요 전국 대회는 프로 스카우트와 대학 감독들이 선수를 가장 집중적으로 평가하는 무대다. 이 기간 동안 주요 대회에 나가지 못하면 선수들은 스카우트 노출 기회를 크게 잃는다. 특히 3학년에게는 이번 시즌이 마지막 기회인데, 청룡기부터 대회가 막히면 프로 진출을 위한 경기 기록과 자료가 부족해진다. 대학 진학을 노리는 선수들도 마찬가지로 통계와 실전 경험이 줄어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2학년,1학년 선수들도 실전경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실력 향상에 지장이 생긴다. 무엇보다 내년 신입 야구부원이 얼마나 들어올지 또는 해체가 될 수도 있다.
해외 사례와 조사 과정의 차이
해외, 특히 미국 고교·대학 스포츠에서는 인종차별적 구호나 행동에 대해 강경한 제재가 내려지는 사례가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국내와 상당히 다르다. 미국에서는 여론에 떠밀려 즉각적인 집단 징계를 내리기보다, 먼저 철저한 사실 확인과 개별 책임 구분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2024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맨스필드 고등학교 농구 경기에서 관중석 인종차별 구호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 있다. 소속 교육청은 농구부에 즉각적인 출전 정지를 가하는 대신, 외부 변호사를 조사관으로 선임해 수주에 걸친 정밀 조사를 진행했다. 학생과 교직원 인터뷰, 법의학적 오디오 분석까지 포함한 조사 끝에 해당 음성은 인종차별 발언이 아닌 단순한 방해 구호로 결론이 났다.
또 다른 사례로 미국 조지아주의 한 대학 야구팀에서 선수 한 명이 인종차별 발언을 한 사건이 있다. 대학 당국은 해당 선수만 야구팀에서 영구 퇴출하고 캠퍼스 출입을 제한했다. 소속팀 전체의 훈련을 중단시키거나 잔여 경기 출전을 금지하는 조치는 전혀 취하지 않았다.
오리건주 센트럴 가톨릭 고등학교 야구부 사례도 유사하다. 경기 전 구호에 인종차별 언어가 포함된 사실이 드러나자 학교는 예정된 한 경기를 기권하는 선에서 대응했다. 시즌 전체 출전 정지와 같은 극단적 조치 대신, 내부 조사를 통해 발언을 주도한 인원을 특정하고 경중에 따라 개별 징계를 부과했다.
이처럼 미국 사례에서는 조사 과정 자체가 상당히 신중하게 진행된다. 사건 발생 후 수주에 걸쳐 영상을 분석하고, 관련자들을 개별 면담하며, 누가 주도적으로 구호를 외쳤는지, 누가 따라 했는지, 누가 현장에 있었지만 가담하지 않았는지를 최대한 구분하려고 노력한다. 그 후에야 가담 정도에 따라 제재 수위를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이번 배재고 사안에서는 사건 발생 후 이틀 만에 단 몇 시간의 면담만으로 팀 전체에 6개월 출전정지가 결정됐다. 그러면서 “선수와 지도자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조사와 제재의 순서가 명확히 뒤바뀐 형태다.
응원도 하지 않은 3학년은 왜 같이 벌받아야 하는가
더 큰 문제는 이 피해가 구호를 외치지 않은 선수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점이다. 이번 경기에서 실제로 시합을 뛰던 3학년 선수들 중 상당수는 덕아웃에서 구호를 외치지 않았다. 그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야구부 전체가 문제”라는 이유로 이들까지 동일한 제재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해외 사례에서도 구호에 가담하지 않은 선수까지 집단적으로 미래를 박탈하는 일은 거의 없다. 행동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 행동하지 않은 사람까지 연좌제로 묶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그런 구분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팀 전체 제재를 먼저 결정한 뒤에야 개별 조사를 하겠다고 한 점은, 해외에서 볼 수 있는 신중한 조사 절차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극단으로 치닫는 어른들의 반응
이런 가운데 배재고 정문 앞에는 “극우 세뇌개 박멸하자”는 극언이 담긴 근조 화환이 놓였다. 고등학생들을 향해 ‘박멸’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는 모습은, 더 이상 비판이 아니라 증오와 배제의 언어로 변질된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움직임이다. 이개호·모경종 민주당 의원은 야구부 해체와 프로야구 진출 금지를 공개적으로 요구했고, 교육부 장관까지 직접 입장을 밝혔다. 광주 지역 109개 시민단체는 규탄 성명을 발표했으며, 학교 정문 앞에는 “프로야구 드래프트 금지”같은 문구가 적힌 근조 화환이 놓였다.
5.18에 대한 가장 큰 모욕은 바로 이것
내가 본 5·18에 대한 가장 큰 모욕 중 하나는 서울시장에 출마했던 한 정치인의 사례였다. 술집 종업원과 어떤 협상에 실패한 그는 분개한 나머지 옆자리 손님과 시비가 붙어 폭행을 가했고, 출동한 경찰관과 말리던 시민까지 폭행했다. 뒤늦게 이 사실이 다시 드러나자 그는 “5·18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깨어있는 시민들은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고등학생들이 경기 중에 외친 구호 하나에 최소한의 소명 기회조차 주지 않고, 정치권과 시민단체, 교육 당국까지 나서서 “야구부 해체”, “프로 진출 금지”, “박멸”이라는 말까지 동원하며 어느 유튜버의 말처럼 탱크로 밀어버리고 있다.
광주의 10대들은 이 모습을 어떻게 볼까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광주의 10대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한마디 잘못된 구호에 누군가의 미래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정의가 살아 있다고 느낄까. 정치권이 나서서 야구부 해체와 프로 진출 금지를 외치고, 교육부 장관까지 가세하며, 109개 시민단체가 규탄 성명을 내고, 학교 앞에 ‘박멸’이라는 문구의 근조 화환이 놓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과연 정의가 살아 있다고 느낄까.
아니면 “여론과 권력이 결합하면 누구든 한순간에 찍어낼 수 있다”는 냉소와 두려움만을 배울까. 5·18의 아픔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면, 그 존중은 증오를 재생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잘못을 바로잡되 인간의 회복 가능성을 지키는 방식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는 일은 그 반대다.
소년들의 미래를 탱크로 밀어버리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과연 영령들은 지금 이 모습을 보고 기뻐할까. 절차를 지키고, 합당한 책임을 묻고, 소년들에게 최소한의 회복 기회를 주는 것을 원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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