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2026.07.06.
해리 트루먼 미 대통령은 1953년 퇴임 후 고향인 미주리주로 돌아가 1차 대전 참전 군인에게 지급되는 연금 월 113달러로 생활했다. 궁핍했지만 고액 연봉의 고문직을 모두 거부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대통령 직의 권위와 품격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일에 나 자신을 빌려줄 수는 없었다”고 썼다. 트루먼 사례는 미 의회가 1958년 전직 대통령 연금 지급 법안을 제정한 계기가 됐다.
▶역대 미 대통령들은 돈 문제에서 결벽에 가깝게 처신하는 전통을 지켜왔다. 1963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재산을 백지신탁으로 맡긴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법적 의무가 없는데도 이를 따랐다. 재산을 남에게 맡기고 운용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눈먼(blind)’ 신탁으로 불렸다. 카터는 가업인 땅콩 농장을 백지신탁했다가 대리인의 부실 경영으로 빚 100만달러를 안고 퇴임했다. 손해를 보더라도 오해 살 일을 피하는 전통이 지켜졌다.
▶트럼프 대통령 계좌에서 지난해 2만1000건의 주식 거래가 이뤄졌다고 한다. 작년 4월 8일 하루에만 애플 등 327개 종목 360만달러어치(약 55억원)를 사들인 뒤 다음 날 아침 “지금은 주식을 살 때”라는 글을 올렸다. 그날 오후 트럼프가 관세 유예 조치를 발표했고 뉴욕 증시는 폭등했다. 미 정부가 인텔 지분 10%를 인수한다고 발표하기 전에도 그는 인텔 주식을 25만달러어치 매입했다. 쿠팡 주식을 18차례 사고판 기록도 나왔다. 트럼프는 “백지신탁한 재산의 운용은 남에게 다 맡겼고, 투자 얘기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신탁의 관리자는 트럼프의 장남이었다.
▶대통령 계좌에서 주식을 거래하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미국 이해충돌방지법은 공무원의 재산과 관련한 직무 수행을 금지하지만, 대통령·부통령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직무가 포괄적이라 규제하면 통치 행위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이유다. 재산 공개만 의무고 처분은 자유다. 하지만 대통령도 직무상 얻은 비공개 정보로 주식을 거래한 의혹이 있다면 퇴임 후 조사받을 수 있다.
▶한국은 2005년부터 고위 공직자가 직무 관련 주식을 3000만원 넘게 보유하면 두 달 안에 팔거나 백지신탁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경우 법 제도는 느슨하지만 고위 공직자들이 절제력을 발휘함으로써 부패 스캔들을 피해왔다. 미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던 자기 통제의 전통에 트럼프가 금을 냈다. 금전 문제에 관한 한 가장 지저분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듯 하다.

일러스트=이철원
나지홍 논설위원 jhr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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