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2026.07.04.
TSMC 구마모토 공장
超高速 완공시킨 건
일본 정부·기업·국민의
반도체 復興 향한 간절함
호남,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양보·희생하며
반도체 성공시킬지 보여줘야

대만 기업 TSMC의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제1공장의 모습. TSMC 구마모토 공장은 일본 정부의 적극 지원과 신속한 인허가 등으로 착공한 지 28개월 만에 준공됐다. / AP연합뉴스
대통령 비서실장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은 “이 정부 임기 내 완공을 목표로 해서 2년 안에 기반 공사를 마무리하겠다”며 대만 기업 TSMC가 일본 구마모토에 건설한 공장을 모델로 들었다. TSMC 구마모토 공장은 예상 건설 기간 5년을 28개월로 단축한 초고속(超高速) 사례로 화제가 됐다.
그러나 막전막후(幕前幕後)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반도체에 배가 고픈 나라다. 일본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해가 지지 않는 반도체 제국이었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란 말도 일본에서 나왔다. 반도체와 결합할 수 있는 산업 분야는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이고 반도체와 결합 방법을 찾지 못한 산업 분야는 퇴보하거나 제자리걸음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후 진행은 그들 예상이 맞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일본 반도체 제국은 미국의 폭탄 한 방에 무너졌다. 일본 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이 80%에 이르고, 일본 공세에 밀린 미국의 대표 반도체 기업 인텔이 1985년 D램 사업을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이자, 미국은 일본에 노골적 통상 압박을 가했다. 결국 일본은 1986년 생산 원가(原價)를 공개하고 미국이 정한 가격 이하로는 시장에 팔지 않겠다는 협정을 맺고 무릎을 꿇었다. 미국 제재로 수익성이 악화한 일본 기업은 연구·개발(R&D)과 시설 투자의 타이밍을 놓쳤다. 일본은 미국 제재를 피하고자 대만 기업에 하청(下請)을 줬고, 이것이 TSMC의 탄생 배경이 됐다. 이때 삼성전자도 날개를 달았다.
일본은 그냥 단념하지 않았다. 총리 직속으로 정부와 민간 기업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여러 차례 재기(再起)를 시도했으나 성과를 보지 못했다. 반도체 기업의 연속 도산(倒産), 휴업과 폐업의 장기화로 반도체 기술과 기술자라는 발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거쳐 도달한 결론이 과거 일본 반도체 산업의 견습생(見習生)이자 하청 업체였던 TSMC를 비롯한 대만 반도체 공장을 일본에 유치해 기술을 배우고 기술자를 다시 육성하자는 것이었다.
TSMC는 구마모토 공장 건설에 돈을 많이 쏟아붓지도, 인허가받기 위해 발품을 팔 일도 없었다. 일본 정부는 조(兆) 엔(円) 단위의 지원금을 지급했다. 일본 총리들과 장관들은 TSMC의 회장·사장을 상객(上客)으로 모시며 인허가 절차는 정부 공무원과 구마모토현 공무원들이 대신 했다.
배부르면 밤일과 휴일 근무를 싫어하게 되는 건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에선 20여 년 전부터 인적 드문 심야(深夜)에 도로 보수 공사를 하는 일이 사라졌다. 구마모토 TSMC 건설 현장에선 1970년대 중동 진출 한국 건설 근로자들처럼 3교대 24시간 철야(徹夜) 근무가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졌다. 근로자의 볼멘소리도, 주(週) 52시간 근무 반대라는 노조의 항의 시위도 없었다.
우리 동네 물을 왜 그리로 빼가느냐는 지자체(地自體) 간 용수(用水) 시비도 없었다. 환경 단체도 공사장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산업용 전기가 필요한 곳에서 원전(原電)에 대한 제한을 이미 풀었다. 5년 공사 기간을 28개월로 단축한 TSMC 구마모토 기적 뒤엔 일본 정부·기업·국민의 반도체 부흥을 향한 간절함이 있다. 현해탄 건너에 이 나라가 있다. 한국의 용인·평택 반도체 라인의 첫 삽을 뜨는 데 6년이 걸렸다.
호남 반도체 투자는 대통령 스스로 시인했듯이 정치적 결정이다. 전당대회용(用)인지 장기 집권용인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다. 비판은 효율을 따지는 경제적 비판, 입지(立地)의 적합성(適合性)을 묻는 공학적(工學的) 비판이다. 한쪽은 축구 시합, 다른 한쪽은 야구 경기를 하는 이 논쟁이 건설적 결론으로 이어지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분명한 것이 있다.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客觀化)해 보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지만,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다. 호남도 마찬가지다. 호남은 원전 건설 반대, 댐 건설 반대를 먼저 접어야 한다.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은 포항과 광양에 제철소를 지으면서 수준 높은 학교를 같이 지었다. 자녀를 보낼 훌륭한 교육 시설이 없으면 모든 부인이 반대하고, 부인이 반대하면 어느 남편도 그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꿰뚫어본 것이다. 낡은 이념에 붙들려 가장 완고한 평준화 교육을 고집하는 전남광주 교육감은 이런 부인들의 의문에 대답해야 한다.
한국의 정책 수명(壽命)은 길어야 5년이다. 같은 당이 정권을 재창출해도 이 수명을 넘기고 살아 남은 정책은 없다시피 하다. 호남 반도체가 그 예외(例外)가 되리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부터 근거를 만들어 가야 한다.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배재고 야구부원들의 사과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것도 작은 시작은 될 수 있다.
강천석 기자 mngedi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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