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전기는 달리고 싶다

dalmasian 2026. 7. 14. 23:02

[손현덕칼럼]  2026.07.14.
한국은 세계 최고 전기선진국
괴담과 주민 민원에 시달려
생산해도 보내지 못하는 현실
어렵사리 세운 송전탑이 운다

                    손현덕 주필

대한민국은 전기 선진국이다. 숫자로 명확하게 입증된다. 공교롭게도 엊그제 인천 지역서 정전 사고가 있긴 했으나 가구당 정전 시간은 1년에 9분30초. 미국은 125분이다. 정전 횟수는 우리는 10년에 한 번꼴. 미국은 1년에 한 번이다. 그만큼 전기 품질이 좋다. 발전소가 내보낸 전력이 최종 목적지인 공장이나 가정에 도달하기까지 중간에 얼마나 누수가 있느냐를 나타내는 송배전 손실률. 우리는 3.5%. 이 역시 압도적 세계 1등이다. 원전을 포기한 독일 같은 나라는 13.6%. 그만큼 산업경쟁력이 높다는 뜻이다. 요즘같이 더운 여름 에어컨 빵빵 틀어댈 수 있는 나라. 그것도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값에.

인공지능(AI) 시대, 반도체 공장 증설하고 데이터센터 짓는 데 전기가 필수라고 한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몇 달 전 페이스북에서 한발 더 나아가 발상의 전환을 했다. "AI는 전기를 먹는 산업이 아니라 전력을 고부가가치로 전환하는 산업"이라고.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대체 불가 산업을 보유한 셈이다. 현재로선 양은 충분하다. 우리나라의 전원 설비는 총 156.6기가와트(GW). 피크타임 때 최대로 필요한 전력은 102.3GW다. 햇빛 없으면 안 되는 태양광이나 바람 불지 않으면 전기 못 만드는 풍력발전이 이 중 36.9GW니 문제 될 게 없다.

활용만 잘하면 되는데 기껏 지은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니 문제다. 발전 설비가 노후화된 게 아니라 생산한들 보낼 수 없어서다. 전기는 전깃줄을 연결하는 철탑을 지나 중간에 전압을 변경하는 변전소를 거쳐 소비자에게 도달한다. 그런데 주민들이 철탑을 세우거나 변전소 짓는 데 반대한다면 병목이 발생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동해안 지역 화력발전소와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서울 수도권으로 보내는 송전망 사업. 당연히 이 전력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직간접적으로 공급된다. 작년 5월 한전은 철탑이 지나는 마을 주민들과 어렵사리 합의를 마쳤다. 강원도 정선 해발 1560m 가리왕산 꼭대기까지 등산화도 없이 올라가고 봉화에서 울진까지 차로 2시간 왕복해 생선회를 사와 주민을 설득하기도 했다. 총 79개 마을, 철탑은 436기. 이 철탑을 280㎞를 이어 달리면 도달하는 변전소가 하남에 있다. 바로 여기서 막혔다. 전자파 등을 이유로 주민들이 반대한다며 지자체가 인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무려 90개월을 끌고 있다. 태백산맥을 넘지 못하고 동해안에서 잠자는 전력량이 7.4GW다. 전기를 안다는 사람이 보면 참 우습다. 이 전기는 500㎸의 고전압이지만 직류다. 직류전기는 주파수가 없다는 건 상식. 당연히 전자파라는 게 없다. 하남에선 이 직류전기를 받아 교류로 전환해 소비자에게 보낸다. 그래서 명칭도 변전소가 아니라 변환소다.

동해안 발전소뿐만이 아니다. 가장 시간을 끈 건 북당진~신탕정 전력망. 당초 목표는 2012년 6월 준공이었으나 무려 12년6개월이 늦어졌다. 매일경제신문 신유경·이대현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핵심 송전망 54개 중 20개가 지연되고 있다.

전기는 물처럼 흐르는 에너지라 기본적으로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뤄지는 제품이다. 발전소라는 게 소비자들이 쓰는 전력량에 맞춰 실시간으로 생산량을 조절할 뿐 저장했다가 꺼내 쓰는 개념이 아니다. 태양광발전에서 자주 거론되는 에너지저장장치(ESS)라는 게 있는데 이는 전기 자체를 저장하는 게 아니라 배터리라는 화학에너지로 바꿔놓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발전소를 지은 이상 전기를 생산해야 하고 그 전기는 전깃줄을 타고 소비자에게 보내야 한다. 김 실장 말마따나 "세계 최고 수준의 요리 기구를 만들면서 정작 우리 주방에서는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을 맞아서야 되겠는가.

[손현덕 주필]

손현덕 기자(ubsoh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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