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돌봄기본법이 가야 할 방향

dalmasian 2026. 7. 15. 07:33

[세상읽기] 2026.07.14.

게티이미지뱅크

김희강 | 고려대 교수(행정학)

지난 3월부터 이른바 ‘영케어러법’으로 불리는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청년을 지원하는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학업에 전념하고 취업을 준비해야 할 시기에 아픈 가족을 돌보는 짐을 짊어진 청소년과 청년의 문제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 커다란 사회적 과제를 던져주었다. 뒤늦게나마 이들을 위한 법적 지원 근거가 마련된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진전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 돌봄은 노인, 아동, 장애인 등 특정 취약 계층에만 국한된 문제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영케어러법의 등장은 청소년과 청년을 포함한 젊은 세대 역시 언제든 돌봄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에 각인시켜주었다.

그럼에도 현재의 영케어러법은 여전히 선별적 지원 구조라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 법은 ‘가족을 돌보고 있는 청소년·청년’이라는 특정 대상을 골라내어 보조하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 문제다. 돌봄을 특정한 집단이나 일부 불행한 이들의 예외적인 이슈로 가두고 대상화하려는 인식 프레임은 여전히 완고하다. 이러한 시각은 돌봄을 사회 구성원 모두의 몫이 아니라, 시혜적인 복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게 한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려면 결국 돌봄을 보편적 이슈로 재정의하는 접근이 필요하며, 최근 국회에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는 ‘돌봄기본법’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돌봄을 보편적 이슈로 바라봐야 한다는 과제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영국 대학의 돌봄 사례를 다룬 한 연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처음에 필자는 대학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고려하여, 학생이나 교직원 등 대학의 주류 구성원 중에서 돌봄을 수행하는 이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관한 연구일 것이라 짐작하였다. 물론 그러한 논의도 중요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해당 연구가 던진 더욱 본질적인 질문은 따로 있었다. 영국 대학들 역시 청소나 경비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돌봄 제공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는 지적이었다. 대학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이들 역시 누군가를 돌보고 있는 주체라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그 연구는 강조하였다.

사실 대학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돌봄 환경은 일반 구성원들보다 훨씬 더 취약하고 열악하다. 이들은 고용 불안과 낮은 임금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생계유지와 가족 돌봄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안정적인 정규직 교직원보다 돌봄을 위한 시간이나 자원을 확보하기가 구조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영국의 이 연구가 소외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돌봄 권리까지 법 제도적으로 두루 고려해야 한다고 짚은 것은 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인간의 삶 전체를 거시적으로 조명해 보면, 돌봄이라는 과정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 인간은 누구나 생애 초기에는 타인의 전적인 돌봄을 받으며 생존한다. 질병을 앓거나 노년에 이르면 다시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취약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사이의 성년기에는 부모나 자녀, 혹은 친구와 이웃을 돌보는 주체로 살아간다. 즉, 인간은 필연적으로 돌봄의 상호의존 관계망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돌봄은 생애 특정 시기에 겪는 일시적인 불행이나 일부 취약 계층만이 짊어지는 짐이 아니다. 인간 삶을 지탱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기본값이다.

앞서 언급한 영케어러 이슈는 청소년과 청년 또한 돌봄 제공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돌봄을 제공하는 이는 여성과 남성, 청년과 노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가 될 수 있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언제든 돌봄 제공자이자 동시에 돌봄 수혜자인 셈이다. 누구도 이 관계망에서 예외일 수 없다.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돌봄을 수행하더라도 그 사람의 삶이 사회적으로 취약해지거나 차별받지 않도록 보장하는 사회적 구조와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다.

새로이 제정될 돌봄기본법은 바로 이 지점에 엄밀히 주목해야 한다. 돌봄은 시혜적 차원에서 특정 취약 집단만을 대상으로 삼는 파편적인 제도가 되어서는 안 되며,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되는 시민 모두의 삶과 존엄에 직결된 보편적 권리이자 의무로 정의되어야 한다. 이것이 이 법이 담아내야 할 원칙이다. 새로 마련될 법 제도는 바로 이 보편적 ‘돌봄 시민’의 가치를 온전히 담아내는 단단한 그릇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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