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모두의 스포츠는 없다

dalmasian 2026. 7. 15. 07:35

[한겨레 프리즘] 2026.07.14.
월드컵에 실망했지만 프로야구 분위기 달라
고물가 시대 야구장은 ‘양지의 나이트클럽’
티켓값 1만8천원…먹고, 소리 지르고, 춤춰

잠실야구장에 모여 응원 중인 팬들. 연합뉴스

           김양희 | 스포츠팀장

2026 북중미 월드컵이 이어지고 있다. 맞다. 아직‘도’ 하고 있다. 15일부터 4강전에 돌입했고, 결승전은 20일 새벽 4시(한국시각)에 열린다.

이번 월드컵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대중적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 비단 월드컵만이 아니다. 지난 2월 열린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 때도 대중의 시선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최가온(스노보드) 등 10대 선수들이 한국 겨울스포츠의 새로운 장을 열었는데도 관심은 일부에 그쳤다. 축구 대표팀의 32강 탈락은 실망스러웠으나 이전처럼 대중의 분노가 극에 달하지도 않았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 하나로 온 나라가 들끓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글로벌 조사기관 모닝컨설트가 2020년 미국 제트(Z)세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스스로를 ‘스포츠 팬’이라고 정의한 비율은 53%였다. 밀레니얼 세대(69%)보다 눈에 띄게 낮았다. 제트세대는 밀레니얼 세대보다 라이브 스포츠를 정기적으로 시청하는 비율도 낮았고, 아예 시청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더 높았다. 30초 이내 짧은 영상에 익숙한 이들에게 2~3시간 이어지는 스포츠 경기는 ‘올드함’, 그 자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을 거스르는 스포츠도 있다. 바로 한국 프로야구다. 케이비오(KBO)리그는 2년 연속 1천만 관중을 돌파했고, 올해는 전반기에만 763만3775명이 야구장을 찾았다. 전반기 424경기 중 231경기가 매진됐고, 좌석 점유율은 87.1%에 이른다. 유례없는 초호황기를 누리는 야구장의 중심에는 2030 세대가 있다. 세계 스포츠계가 젊은 팬 확보를 고민하는 가운데, 한국 야구장은 젊은 관중의 열기로 뜨겁다.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의 젊은 세대는 야구를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소비한다. 이들에게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새로운 형태의 ‘축제’이자 ‘덕질’의 장이다. 고물가 시대에 야구장은 평균 1만8584원의 티켓 한장으로 탁 트인 야외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음껏 소리를 지르며 춤출 수 있는 곳이다. 이만큼 가성비 좋은 페스티벌 공간도 없다. 복잡한 경기 규칙을 몰라도 괜찮다. 선수별 응원가를 목청껏 따라 부르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푼다. 오죽하면 ‘양지의 나이트클럽’이라고 할까.

여기에 최근 흥행의 중심축으로 떠오른 2030 여성 팬들의 아이돌식 팬덤 문화가 강력하게 결합했다. 이들은 경기 승패에만 머물지 않는다. 좋아하는 선수의 유니폼을 입고, 캐릭터 굿즈를 사기 위해 몇시간씩 줄을 선다. 경기가 없는 날에도 구단 자체 유튜브 채널의 영상 등을 찾아보며 선수의 인간적인 매력과 서사에 깊이 몰입한다. 인스타그램 릴스나 틱톡 화면을 장식하는 홈런 세리머니와 황당한 실책 ‘밈’은 야구에 관심 없던 이들을 경기장으로 이끄는 새로운 입구가 된다.

프로야구 또한 에이비에스(ABS·자동 볼 판정 시스템), 피치 클록 제도를 도입해 경기의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템포를 끌어올렸다. 경기장 밖에서는 구단들이 유튜브와 쇼트폼 콘텐츠를 쏟아내고, 캐릭터와 굿즈를 끊임없이 내놓는다. 야구는 이제 9이닝이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프로야구 흥행은 단순히 전통적인 의미의 스포츠 팬이 늘어난 결과만은 아니다. ‘한국 프로야구’라는 44년 역사를 품은 콘텐츠가 젊은 세대의 놀이 문화와 소셜미디어, 팬덤 비즈니스와 결합하면서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으로 진화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가주의와 애국심에 기대어온 국민을 티브이 앞으로 불러 모으던 보편적 스포츠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그렇다고 스포츠의 시대가 끝난 것은 아니다. 한국 프로야구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택하고 있다. 모두가 같은 것을 보며 열광하던 시대는 끝나가지만, 좋아하는 것을 자기 방식대로 깊이 파고드는 시대는 열렸다. 어쩌면 이는 비단 스포츠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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