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쪽지] 2026.07.18.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

인문학 강의를 가면 ‘인식의 상대성’ 얘기를 많이 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이 옳지만은 않다는 것을, 다른 사람의 눈에는 틀려 보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식의 상대성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시피 하기에 인식의 상대성을 수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심리학에는 ‘자기고양적 편향’이라는 개념이 있다. 자기 자신을 높이는 방식으로 생각하는 편향이다. 성공하면 자신의 능력이 좋고 노력을 해서라고 생각하고, 실패하면 외부적 요인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는 이러한 인지 편향을 극복하기를 요구한다. 성공에도 실패에도 나로 인한 이유도 있고 외부의 환경적 요인도 있을 것이다. 비판적 사고를 하려면 성공이든 실패든 내부 요인이 뭔지 외부 요인이 뭔지를 잘 따져야 한다. 이때 어느 한 요인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기 쉬운 대로만 보면 진면모를 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고, 싫은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는 것은 무비판적 사고다. 합리적 근거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과의 친분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우리는 타인의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매우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의식하지 못하기 쉽다. 스스로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을 잘 의식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타인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덜 내게 된다. 자기가 옳다는 아집에 빠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다.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 자체가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음을 말해주니 말이다.
‘나의 생각에 틀린 측면이 있을 것이다. 언제든 그 측면이 발견되면 나는 나의 생각을 수정할 것이다’로 생각하는 것은 인식의 상대성을 잘 의식하고 있는 태도다. 이렇게 인식의 상대성 얘기를 하다 보면 듣던 분들 중에서 의아해하며 묻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보편타당이라는 게 있지 않나요?” 그러면 철학에서는 보편타당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말씀드린다. “보편타당은 있기야 하겠지요, 그런데 누가 보편타당을 말했는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자신이 보편타당하게 생각하고 말한다는 것을 보증할 수 없으니까요.”
보편타당은 우리가 닿을 수 없지만 그래도 자꾸만 우리의 방향을 가늠해보게 만드는 일종의 바로미터다. 그 개념의 존재 자체가 우리를 단속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그런 개념이다. 칸트는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을 ‘규제적 이념’이라고 했다. 자신의 생각이 보편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틀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우리가 할 일은 보편타당을 참칭하지는 않으면서도 보편타당을 향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철학은 지속적인 비판으로 편파를 제어해 나가면서 가장 덜 편파적인 인식에 이르려는 노력이다.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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