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더 중요한 것을 위해 덜 중요한 것을 내려놓는 용기

dalmasian 2026. 7. 22. 11:18

[이상학 목사의 우보천리]
2026.07.22.

현대인은 늘 바쁘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직장과 가정, 육아와 건강 챙기는 일까지 빈틈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청소와 요리를 기계에 맡기다가 이제는 직업적 분주함까지 인공지능(AI)에 맡긴다.

독일의 사회심리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이런 현대인을 두고 말했다. “현대인은 너무나 바빠서 끊임없이 기계의 도움을 얻으려 한다. 하지만 이렇게 절약한 시간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워한다.” 사회 시스템의 부속품처럼 부지런히 움직일 뿐 진짜 자기 삶을 살지 못하는 현대인의 병증을 꼬집어준 말이 아닐까 싶다.

현대 기독교인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 같다. 직장 일에 자기 집뿐만 아니라 아버지 집까지 살펴야 하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한다. ‘내가 지금 바쁘다는 것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요, 하나님 일에 충성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하루 스케줄 중 생활인으로서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것을 뺀다면 내게 주신 소명(부르심)을 이루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일반적인 교회의 봉사와 소명을 이루는 삶은 결코 같지 않다. 소명은 내게 주신 고유하고 독특한 부르심을 이루는 진짜 내 삶이다. 소명을 춤으로 비유한다면 사람에게는 모두 짧은 인생에 자기만이 춰야 하는 고유하고 창의적인 춤사위가 있다.

그런데 현대인은 다른 사람이 추라는 춤, 마땅히 춰야 하는 의무의 춤을 추느라 자기 춤을 찾지 못하고 찾아도 당당히 출 용기와 믿음을 갖지 못한다. 그러면서 ‘하나님 일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일정표에 깨알같이 스케줄을 넣어두고 뭔가를 쫓아다닌다. 유진 피터슨은 이런 현대 그리스도인의 일상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현대인에게 분주함은 마귀의 올무가 아니다. 분주함 자체가 마귀다.”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 분주함이 하는 일이 딱 마귀의 일이기 때문이다. 덜 소중한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만들어 더 중요한 것을 이루지 못하게 하니 말이다.

2024년 가을 안식년을 맞아 종교개혁지 순례를 한 적이 있다. 르네상스가 시작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시작해 장 칼뱅의 도시 스위스 제네바를 거쳐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현장을 지나 종교개혁 이전의 개혁자 얀 후스의 나라 체코까지의 9박10일 대장정이었다. 많은 곳에서 은혜를 받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은 바르트부르크성(城)이었다. 루터가 1521년 보름스 국회에서 자신의 입장 철회를 거부하고 쫓기며 숨어 들어간 곳이다. 이곳에서 루터는 10개월간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은둔과 고독의 시간을 강제로 보내야 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여 초기에는 우울증세를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루터 전체의 인생을 펼쳐보면 바로 이 은둔과 고독의 10개월이야말로 가장 창조적이고 위대한 시간이었다.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이 기간 헬라어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마쳐 성경이 마침내 사제와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민중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 책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저변을 넓히며 유럽 전역에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기틀이 됐다. 그 현장에서 루터가 은둔하며 지냈던 3.3㎡ 남짓한 서재를 잊을 수가 없다. “그렇구나. 가장 위대한 것은 은밀한 곳에서 시작되는구나.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하게 하려고 하나님은 때로 덜 중요한 것들을 내려놓게 하시는구나.”

그 시간은 인간적으로는 루터에게 뺄셈의 시간 같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는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덧셈의 시간이 되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했다. 가난해진다는 것은 모든 것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많은 선택지 중 소명에 해가 되는 것은 용기 있게 내려놓고, 가장 소중한 것을 취할 줄 아는 것이 심령의 가난이다. 모든 것을 이루려고 사방팔방 쫓아다니다 정작 소명을 놓치고 마귀에게 미소짓게 하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새문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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