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최태원 ‘반도체 역풍론’, 기업에 앞서 정부가 고민해야

dalmasian 2026. 7. 22. 07:53

2026.07.21.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제주에서 열린 제49회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의 회장이 “내 걱정은 반도체 가격이 내려갈까가 아니라 더 올라갈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 총수가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익이 늘어나는 상황을 오히려 경계한 것이다.

최 회장의 시선은 개별 기업의 단기 실적이 아니라 한국 반도체 산업 전체의 중장기 생존에 맞춰져 있다. 그는 “지금 메모리 가격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며 “마진이 좀 떨어져도 공급을 늘리고 시장을 보호해야 한국 반도체 산업이 유지·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반도체 가격이 치솟는 ‘칩플레이션’이 장기화하면 PC·스마트폰 등 완제품 시장이 위축되고 일론 머스크처럼 막강한 자금력을 갖춘 신규 경쟁자들이 뛰어들어 경쟁이 격화되는 역풍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더 큰 위험은 지정학적 리스크다. 최 회장은 “칩플레이션이 나타나면 지정학적으로 얻어맞을 수밖에 없다. 옛날에 똑같이 일본도 맞았던 이야기”라며 “주요국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메모리 확보를 경제 안보 문제로 인식한 강대국들이 통상 압박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1980년대 세계 시장을 석권한 일본 반도체 산업은 미국의 보복 관세와 판매 가격 제한 등 강도 높은 통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급격히 쇠락했다. 과도한 시장 지배력과 막대한 이익이 국제사회의 견제를 부르면서 산업 기반 자체가 무너졌다. 국가 차원의 대응이 미흡했던 셈이다.

반도체는 단순한 수출품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 자산이다. 최 회장은 각국 정부로부터 메모리를 구해달라는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런 통상 압박을 방어하고 기업의 방패막이가 되는 것은 원래 정부의 역할이다. 그런데 국가가 감당해야 할 외교·안보적 부담을 기업이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31년 전 이건희 삼성 회장은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했다. 그동안 기업은 과감한 투자와 혁신으로 1류 반열에 올랐다. 반면 정치와 행정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선 여전히 산업을 키우고 지키는 방법보다 초과이윤을 나누는데만 골몰하고 있다.

1980년대 일본 반도체에 충격을 준 것은 미국의 압박이었지만, 진짜 패인은 국가 차원의 전략 부재였다. 우리 반도체 산업도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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