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5.

정부가 32억원이 넘는 고가 주택과 비거주 1주택자, 다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내용을 담은 '2026 세제개편안'을 발표한 가운데 4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모습./뉴시스
정부가 발표한 ‘2026년 세제 개편안’은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를 실거주 중심으로 바꿨다. 초고가·비거주 주택은 세율과 중과세를 크게 높였고,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도 2029년부터 ‘10년 실거주’를 채워야 최대 80%를 인정받게 된다. 수입 없는 고령 1주택자, 자녀 교육이나 지방 발령으로 몇 년씩 집을 비웠던 비강남권 실수요자까지 세 부담이 늘어나게 생겼다. 그런데 이 개편안에서 소외된 대상이 있다. 전·월세로 사는 세입자다.
전·월세 시장은 이미 심각하다. 서울 아파트 전·월세 수급 지수는 6월 둘째 주 122.5로 5년 반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수요가 공급보다 20% 이상 많다는 뜻이다. 무주택자와 젊은 층은 서울 외곽으로 밀려나고, 서울 평균 전셋값도 사상 처음 7억원을 넘겼다. 더 심각한 건 이 수치들이 정책 ‘예고편’만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실거주 강화 소문에 지난 1년 새 서울 아파트 월세 비율은 54.8%로 역대 최고를 경신했고 평균 월세도 159만원을 넘겼다. 이제 ‘10년 실거주’와 ‘종부세 기본 공제 차등’(실거주자 14억원, 비거주자 9억원)이 제도화에 들어간 이상 징벌적 세금을 피하려는 집주인들의 세입자 퇴거 요구와 월세 전가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세제 압박으로 매물을 유도하고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산이겠지만, 대출 길목이 막힌 채 고금리·고물가에 시달리는 세입자에게는 “집값이 좀 내리면 사면 된다”는 셈법 자체가 현장과 동떨어진 얘기다. 집값이 다소 내린다고 해서 당장 전세금 마련도 벅찬 무주택자가 그 집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입자에게 돌아오는 건 내 집 마련의 기회가 아니라 살던 집에서 쫓겨날 위기만 커질 뿐이다.
규제가 많아지면 시장의 편법도 늘게 마련이다. 10년 거주 요건이 생기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형식적인 주민등록 공동 등록을 요구하거나 전입신고를 몇 달씩 미뤄달라고 회유·압박하는 편법이 곳곳에서 나올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발표 하루 만에 강남 3구 등에서 전세 매물이 줄고 있다고 한다.
다주택자와 초고가 주택을 겨눈 화살이 고령자와 실수요자를 스치고 결국 집 없는 세입자에게 꽂힌다면 그건 정책의 실패다. 정부는 갈수록 악화되는 전·월세 문제에 대한 대책을 이번 개편과 함께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집값 잡으려다 세입자만 잡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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