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2.
김학중 목사의 트렌드 리더 <3>

게티이미지뱅크
월요일 아침, 요란하게 울리는 스마트폰 알람에 무거운 눈을 뜨는 3040 직장인들의 첫 행동은 습관적으로 고농축 카페인을 들이켜는 것이다. 주말의 피로가 채 가시지도 않은 몸으로 만원 지하철에 오르고, 퇴근 후에는 쉴 틈 없이 외국어 학습 앱이나 재테크 채널을 들여다본다. 일분일초를 쪼개어 알차게 살아내는 ‘갓생(God生)’ 트렌드가 어느새 우리 사회의 고결한 미덕으로 자리 잡았다. 소셜 미디어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독서를 완수하는 ‘미라클 모닝’ 인증샷이 넘쳐난다. 이토록 숨 막히는 무한 경쟁의 트랙 위에서 잠시 멈춰 서거나 무력감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짙은 불안에 사로잡힌다. 남들은 치열하게 달리고 있는데 나만 도태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일상을 짓누른다. 휴식은 권리가 아니라 성공의 궤도에서 이탈하는 불안한 일탈이 돼버렸다.
갓생 열풍 이면에는 우리 사회를 조용히 잠식한 질환,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 드리워져 있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직장인의 70% 이상이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동반한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철학자 한병철이 예리하게 통찰했듯, 과거가 외부의 강압으로 노동을 착취당하는 규율 사회였다면, 오늘날은 스스로가 자신을 가해하고 착취하는 ‘성과사회’다. “너는 할 수 있다”는 무한한 긍정의 구호는 역설적으로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그 책임을 개인의 의지력 부족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끝없는 자기 착취의 결과는 내면의 에너지가 전소되는 번아웃으로 귀결된다. 번아웃은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사회 구조가 만든 안타까운 상처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 번아웃의 양상이 디지털 환경의 발달과 함께 훨씬 더 교묘하고 실존적인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직장의 문을 나서는 순간 노동이 종료되었지만, 플랫폼 노동의 보편화와 끊임없는 알림 메시지로 인해 일과 휴식의 물리적 경계가 완전히 증발해 버렸다. ‘상시 접속(Always-on)’이 강요되는 사회 속에서 현대인들은 단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만성적 피로에 시달린다. 심지어 쉼조차 알고리즘에 맞춰 타인에게 증명해야 하는 ‘수행적 휴식’으로 변질되면서, 화려한 타인의 일상과 나를 비교하게 만드는 접속의 피로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야 할 휴식마저 성과 측정의 무대로 전락하며 깊은 위기로 우리 삶을 덮치고 있다.
이토록 실존적 위기에 내몰려 안식과 치유를 갈망하는 영혼들에게, 평안을 주어야 할 교회 역시 때로는 성과사회의 짙은 그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생존 경쟁에서 버티다 주일에 예배당을 찾은 성도들을 기다리는 것은, 온전한 위로보다 또 다른 형태의 거룩한 노동일 때가 적지 않다. 교사, 찬양대, 주차 안내 등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봉사 스케줄은 직장 생활 못지않게 숨이 가쁘다.
자발적인 헌신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고귀한 원동력이지만, 문제는 그 헌신이 개인의 한계를 초과해 또 다른 번아웃으로 이어질 때 발생한다. 우리는 쓰러질 때까지 일하는 것을 성숙의 증거로 칭송하고, 잠시 쉬고 싶다는 고백을 헌신이 부족한 나태함으로 무겁게 바라보지 않았는가. 세속의 성과주의가 스며들어, 거저 주어지는 은혜조차 땀 흘려 봉사한 대가로 주어지는 보상처럼 여겨지는 아쉬운 순간들이다.
안식일(Sabbath)의 본질을 다시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안식일은 단순히 일주일에 하루 노동을 멈추는 수동적인 날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존재 가치가 내가 생산하는 성과나 봉사의 양으로 증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선언하는 능동적인 저항이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로 살았을 때, 그들에게는 쉴 권리가 없었다. 오직 벽돌을 얼마나 구워내느냐로 존재 가치가 매겨졌다. 그러나 출애굽 이후 주어진 안식일 계명은 자유인만이 누릴 수 있는 고귀한 특권이었다. 기계처럼 돌아가는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에서 스스로 걸어 내려와, “나는 있는 모습 그대로 존귀하며, 나의 쓸모는 성과로 환산되지 않는다”고 선포하는 위대한 멈춤이다. 따라서 안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가치한 시간이 아니라, 훼손된 존엄을 회복하는 적극적인 치유의 행위다.
물론 끊임없이 자신의 효용을 증명해야만 살아남는 현실 속에서, 하루를 온전히 멈춰 쉰다는 것은 엄청난 불안과 현실적 기회비용이 따르는 일이다. 남들이 달려나갈 때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두려움과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가 파국을 맞이하듯, 멈춤이 없는 삶은 영혼의 파산을 피할 수 없다.
이제 교회는 기계적인 행동 지침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공동체의 체질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깊은 성찰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헌신을 무조건 강요하고 과로를 미화하는 언어를 교정하고, 피로를 신앙의 훈장으로 여기는 낡은 문화를 걷어내야 한다. 지친 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일정 기간 직분에서 벗어나 온전히 회복에만 집중하도록 넉넉한 곁을 내어주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참모습이다.
번아웃은 결코 당신의 죄가 아니다. 치열하게 삶의 무게를 감당해 온 눈물겨운 훈장일 뿐이다. 교회라는 공간이 끝없는 자기 착취의 쳇바퀴에서 내려와 고단한 몸을 뉘는, 가장 눈부신 저항의 베이스캠프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김학중 목사(꿈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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