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우리는 반도체를 지킬 수 있을까

dalmasian 2026. 4. 3. 18:31

[이상렬의 시시각각] 2026.04.03.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대만의 호국신산(護國神山·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 대만 반도체기업 TSMC에 붙은 별칭이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을 꽉 잡은 TSMC의 존재가 대만의 경제·안보를 지킨다는 의미다. 그런데 최근 한국 경제엔 메모리 반도체가 호국신산이 된 것 같다. 인공지능(AI) 열풍의 필수재가 된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시장의 80%를 차지한다. 두 회사의 D램 점유율은 약 70%. 지경학에서 말하는 ‘대체불가’의 존재감이다. 이란엔 호르무즈해협이, 대만엔 TSMC가 있다면 한국엔 메모리 반도체가 있는 셈이다. 이란전쟁으로 세계경제가 얼어붙는 와중에도 3월 수출이 역대 최고치(861억 달러)를 달성한 것도 전년보다 1.5배가 늘어난 반도체 때문이다. 국내 증시도 두 회사 주가에 따라 울고 웃는다.

이런 메모리 반도체를 우리는 지킬 수 있을까.

메모리 반도체, ‘호국신산’ 역할
미·중 국가적 차원의 지원 펼쳐
인재 확보·이기적 정치 차단 필요
지난해 3월 11일 인민대 충양금융연구원에서 열린 '중국제조2025' 평가 세미나에서 차이퉁쥐안(蔡?娟) 거시연구부 주임이 지난 10년 간 중국과 미국의 제조업 수출 규모를 비교 설명하고 있다. 신경진 기자원본보기
지난해 3월 11일 인민대 충양금융연구원에서 열린 '중국제조2025' 평가 세미나에서 차이퉁쥐안(蔡?娟) 거시연구부 주임이 지난 10년 간 중국과 미국의 제조업 수출 규모를 비교 설명하고 있다. 신경진 기자

대외 여건은 유리하지 않다. 우선 G2인 미국과 중국의 야심이 맹렬하다. 중국은 반도체 자립을 2026~2030년 경제 계획의 핵심 과제로 선정했다(지난 3월 양회). 이를 위해 천문학적인 돈과 정책적 지원이 투입된다. 이 계획이 무서운 것은 중국이 ‘한다면 한다’는 것을 ‘중국제조 2025’에서 입증했기 때문이다. 11년 전 제조업 강국을 목표로 내건 이 계획을 통해 중국은 전기차, 드론, 로봇 등에서 세계적 강국이 됐다.

미국은 어떤가. ‘반도체 설계는 미국, 생산은 동아시아’라는 국제 분업 전략에서 미국 내 직접 생산으로 돌아섰다. 미국 메모리 기업 마이크론(세계 3위)이 올 1월 인건비 비싼 뉴욕주에 신규 공장을 착공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착공식에서 “메모리 반도체 생산 기업엔 두 선택지가 있다.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이라고 했던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의 압박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최근엔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가 미국 텍사스에서 직접 반도체를 생산하겠다고 뛰어들었다.

바깥도 문제지만 우리 내부 상황도 심각하다. 시급히 풀어야 할 몇 가지 이슈가 있다. 첫째, 어떻게 인재를 확보할 것인가. 반도체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현재 주력산업인 조선·원자력 등의 성장은 과거 최고의 인재들이 몰렸기에 가능했다. 지금은 의대가 블랙홀처럼 우수 학생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미 양성된 인력 이탈도 심각하다. 미국과 중국 기업들이 수억원의 연봉을 제시하며 당겨간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 가운데 AI 인재 순유출이 가장 높은 그룹에 속한다. 성과와 보상이 일치하지 않는 보상체계 왜곡 탓이 크다. 사회 전반의 ‘평등주의’를 ‘성과주의’로 바꿔가야 한다.

둘째, 어떻게 상생의 노사관계를 구축할 것인가. 삼성전자 노조가 5월 파업에 돌입할지 조마조마해 하는 이가 많다. 노조의 보상 요구가 국민 정서와 괴리가 있는 건 맞지만 비난만 할 일도 아니다. 노조 역시 파업이란 극단적 수단을 꺼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노사 화합이 깨져 파업이 벌어지는 반도체 회사는 초정밀과 고객 신뢰가 필수인 글로벌 경쟁에서 버티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TSMC, 인텔, 엔비디아엔 아예 노조가 없다.

셋째, 정치권의 이기적 개입을 어떻게 차단할 건가. 정치인들은 전력 문제 등을 앞세워 반도체 산업단지를 서로 자기 지역으로 끌고가려고 혈안이다. 국익보다 정치적 이익 때문이다. 인프라를 새로 깔아야 하고, 반도체 생태계가 와해되고, 인재들이 이탈하는 것은 고려 대상이 아닌 듯하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겠다는 발상이나 다름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AI 시대의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원본보기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AI 시대의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중국의 반도체 자립 목표 기한은 2030년이다. 공교롭게도 2030년은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다. 앞으로 4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한국 반도체 산업의 명운이 달라진다. 기업과 정부, 정치권이 모두 힘을 모으는 국가 총력전이 필요하다. 호국신산은 그저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