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늙음은 통제 대상이 아니다

dalmasian 2026. 4. 2. 21:47

[청사초롱] 2026.04.01.
최호진
한양대 구리병원
신경과 교수

최근 고령 운전자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고령 운전자 자격을 둘러싼 논쟁이 자주 등장한다. 일정 연령이 되면 면허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현실에서 75세 이상의 고령층은 간단한 인지기능 선별 검사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제한을 통해서 사고 위험을 줄이자는 취지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논의가 이어질 때마다 마음 한 켠이 불편해지곤 한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고령의 어르신들을 먼저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가 초고령사회로 들어서면서 사회 곳곳에서 비슷한 논의들이 나타난다. 고령 운전 제한뿐만 아니라 각종 의사결정 능력 평가 등에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어르신들의 연애도 축복보다는 편견을 가지고 보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이러한 시각은 어르신들은 물론 우리 사회의 안전과 보호를 명분으로 한다. 물론 실제로 도움이 되는 제도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고령의 어르신들을 보호하고 있는가, 아니면 통제하고 있는가.

물론 나이가 들수록 신체 능력과 인지 기능이 변하는 것은 사실이다. 의학적으로도 일정한 평가와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연령 자체가 위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나이라도 건강 상태와 생활 능력은 크게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는 행정편의적으로 가장 단순한 기준을 종종 선택한다. 연령이라는 숫자다. 숫자는 행정적으로 편리하지만, 한 사람의 삶을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문제는 이러한 관점이 너무나 쉽게 확산된다는 점이다. 고령의 어르신들은 보호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감시하고 관리하는 대상이 된다. 이동, 금융, 일상생활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규제의 논리가 먼저 등장한다. 안전이라는 명분은 설득력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의 존엄과 자율성이 얼마나 충분히 고려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고령의 어르신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만들고 지탱해 온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많은 제도와 환경 역시 그 세대의 땀과 노력 위에 세워져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그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고령의 어르신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제도와 태도는 단순한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늙어가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삶의 선택이 점점 줄어드는 사회인지, 아니면 서로의 변화를 이해하며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사회인지의 문제다.

우리 사회의 안전은 물론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안전을 이유로 한 사람의 삶을 지나치게 단순한 기준으로 재단하는 사회는 올바른 사회라고 보기 어렵다. 고령자도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교통 환경, 지역사회 안에서의 돌봄 체계 같은 더 정교한 사회적 설계가 필요하다. 고령의 어르신들에 대한 규제를 무조건 반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선 사람을 중심에 두고 고민해보자는 이야기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고령의 어르신들을 규제하는 방안을 먼저 떠올리기보다는 그분들을 어떻게 도와야 그분들이 안전하게 삶을 살아가고 우리 사회도 안전해질지에 대해서 우선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늙음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는 결국 우리 자신의 미래를 통제하려는 사회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늙음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사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존중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회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길을 선택하고 있는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호진
한양대 구리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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