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2026.04.07.

남혁상 논설위원
트럼프, 오락가락 메시지에도
‘전쟁 출구는 동맹 몫’ 방향 명확
동맹에 공개압박, 조롱도 불사
‘거래외교’ 넘은 ‘조공외교’ 단계
국제질서, 협력 아닌 복종 재편
자강·연대 강화·협상력 없으면
선택 아닌 선택 당하는 상황 될 것
미국-이란 전쟁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응은 예측 불가다. 조기 합의를 내비쳤다가 “에너지 인프라를 초토화하겠다”고 하고, “협상이 잘 되고 있다”고 했다가 “석기시대로 돌려 놓겠다”고 위협한다. 트럼프의 변덕은 이제 스타일의 문제를 넘어섰다.
그 단면이 그대로 드러난 장면이 얼마 전 백악관에서 열린 부활절 오찬 자리다. 트럼프는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미국 문제가 아니라면서 “유럽이 하게 두자. 한국, 일본이 하게 두자”고 했다. 주한미군과 북핵을 거론하며 “한국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나마 친했던 프랑스 대통령을 거론한 다음엔 “아내에게 학대받는다”고 공개적으로 조롱했다. 그런데 말은 오락가락하지만 방향이 흔들린 적은 없다. 자신이 시작한 전쟁을 끝낼 의향은 있는데 해협 개방과 그 비용은 다른 나라가 맡아야 한다는 메시지다.
이번 전쟁에서 특히 두드러진 건 트럼프의 이중적 태도다. 대이란 군사행동은 독단적으로 시작했지만 그 후폭풍과 비용은 동맹과 파트너들에게 떠넘기려 한다. 해협 봉쇄로 세계 에너지 시장이 요동치는데도 미국은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며 동맹이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백악관이 전쟁비용의 아랍 국가 분담을 거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쯤 되면 이런 방식을 여전히 ‘거래 외교’로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스나이더는 최근 외교전문지 오픈캐나다에서 현재는 ‘조공 외교(tributary diplomacy)’로 넘어선 단계라고 진단했다. 거래에는 최소한의 상호주의가 남아 있지만, 지금의 트럼프 외교는 상대가 얼마나 양보하고 충성하는지를 시험하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포린어페어스 등에서 이런 양상을 ‘포식적 패권(predatory hegemony)’으로 규정했다. 그는 미국이 동맹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양보와 복종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변했다고 분석했다. 더 이상 국제질서의 균형추가 아니라 우위를 이용해 이익을 빨아들이는 ‘포식자’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이 흐름은 동맹에 안보 청구서를 요구하고 공개 압박을 가하는 식으로 확산하는 중이다.
그런데 ‘아첨 전략’으로 미국 비위를 맞추던 유럽이 이번 전쟁을 계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는 기지 사용 요구를 거부했고, 폴란드는 패트리엇 재배치를 거절했으며, 스페인은 미군 항공기의 영공 통과를 허용하지 않았다. 프랑스도 지원을 사실상 거부했다. 이해관계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동맹을 인정하면서도 “여기까지”라며 선을 긋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국 상황은 더 복잡하다. 이럴 때 가장 쉬운 대응은 “우리는 다를 것”이라고 상대방 호의를 예상하며 예외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월트는 이런 접근이 장기적으로 더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그는 한국을 ‘조공 외교’의 전형적인 시험대로 보면서, 과도한 미국 의존이 전략적 자율성을 약화시키고 더 큰 요구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핵 문제나 경제적 이익을 이유로 특정 지도자와의 ‘특별한 관계’에 기대는 전략은 단기적 효과는 있겠지만 결국 더 깊은 종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제시하는 그의 대안은 명확하다. 자주국방과 연대 강화, 협상력이다. 미국이 언제든 비용을 요구하거나 역할을 조정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스스로의 억지력과 선택지를 확보하고, 동시에 미국 의존도를 줄이면서 유럽 등 중견국들과 연대를 통해 공동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다. 또 한국은 일방적으로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파트너라는 점을 카드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단순하지만 실행은 쉽지 않은 과제다.
물론 서구의 국제정치학자들이 한국의 외교안보 사안 전반을 모두 꿰뚫어 보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분명한 건 협력과 신뢰가 어느 정도 통하던 국제질서가 이제 복종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란 전쟁은 그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다가올 수 있다. 이때 “우리는 다를 것”이라며 예외를 찾을 것인가, 아니면 일정한 기준을 세우고 연대해 대응할 것인가. 우리 스스로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떠밀려 갈 수도 있다.
남혁상 논설위원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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