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예측 불가능한 미국, 흔들리는 세계 질서

dalmasian 2026. 4. 7. 20:56

[동아광장/전재성]2026.04.06.
트럼프 외교, 준비된 전략과 즉흥적 확전 충돌
동맹 프로토콜 붕괴, 한국 안보에도 불안 요인
반미 아닌 전략 재설계로 ‘기회의 창’ 모색해야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전면전으로 번지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로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 전쟁 기간 내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보여준 유례없는 불확실성은 동맹국들에 단순한 불안을 넘어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외교정책은 성격이 다른 두 개의 층위가 충돌하고 있다. 첫 층위는 헤리티지재단의 ‘프로젝트 2025’ 등 보수 싱크탱크들이 치밀하게 설계한 준비된 전략이다. 서반구 먼로 독트린 재해석, 그린란드·파나마 영토 논의, 대중국 관세,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과 제재 재가동이 이에 해당한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빠르게 추진된 이들 정책은 인력과 법적 근거까지 사전에 준비된 것이었다.

문제는 두 번째 층위로 상황 전개에 따른 기회주의적 확전 전략이다. 이란 정책이 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 프로젝트 2025는 이란에 대해 최대 압박 제재와 이스라엘과의 안보 협력을 권고했으나, 직접적인 군사 공격이나 정권 교체는 명시하지 않았다. 취임 초 트럼프는 알리 하메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에게 서한을 보내 핵 협상을 제안했고, 오만에서 수차례 간접 회담이 진행됐지만 결국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하메네이 제거를 포함한 것으로 알려진 작전은 프로젝트 2025의 압박 기반 틀을 넘어선 것이었다. 쿠바 역시 마찬가지다. 취임 전 준비된 정책은 테러지원국 재지정과 여행·송금 제한 수준이지만, 베네수엘라와 이란에 이어 ‘쿠바가 다음’이라며 군사 행동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있다. 사전 설계된 순차적 전략이 아닌 성공 경험이 다음 행동을 촉발하는 모멘텀 구동형 확전이다. 명확한 전쟁 목적 없이 전면전으로 확대된 이란 전쟁은 당초 준비되지 않은 외교 전략의 시작을 알렸다. 미국 외교는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응변에 따라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미국의 불확실성은 국제정치의 이상 현상을 낳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중국의 ‘강압적 일관성’이 국제 무대에서 일종의 전략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예측 가능성의 무기화’다. 중국의 외교가 규범에 어긋나고 강압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왔지만 중국의 외교에는 최소한 일관된 패턴이 있다는 인식이다. 무엇을 하면 보복당하고, 무엇을 하면 협력할 수 있는지에 대한 행동 원칙이 명확해지면서 중국과의 관계는 관리 가능하다는 인식이 강화됐다.

글로벌 시장과 국가들에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규칙의 부재’다. 미국의 행보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중국의 강압 외교는 역설적으로 관리 가능한 위험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전통적 우방인 유럽 국가들조차 미국을 통제 불가능한 변수로, 중국을 예측 가능한 상수로 놓기 시작했다. 규범을 어기더라도 패턴을 읽을 수 있는 상대가, 규범을 말하면서도 내일을 알 수 없는 상대보다 낫다는 논리가 미중 전략 경쟁의 판도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불확실성은 동맹 전략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전쟁 개시 전 동맹국과 전략적 목적을 공유하거나 역할 분담을 상의하는 최소한의 관행, 즉 ‘동맹 프로토콜’이 사라졌다. 이는 향후 대만 해협 유사시에도 한국과의 사전 협의가 생략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불길한 전조다.

여기에 미국의 소극적 안보 전략에서 파생되는 동맹의 역설이 더해진다. 미국이 자제와 비용 절감을 표방하며 개입을 줄이려 하자 동맹국인 이스라엘 등은 자국 중심의 극단적 자율성을 발휘하며 공세적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사건 발생 후 동맹을 포기하기는 어려운 미국으로서는 결국 전쟁터에 끌려 들어가는 것이다. 또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뚫기 위해 동맹의 도움을 요청한 트럼프 대통령을 유럽 동맹들이 외면하면서, 미국은 또 다른 딜레마에 직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 정책은 버리지도 활용하지도 못하는 ‘동맹 딜레마’로 귀결되고 있다.

한국은 이 흐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우선 경계해야 할 점은 트럼프의 일방주의에 대한 실망이 반미 정서나 미국 경시론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미국이 탈패권 시기에 진입하고 있지만 일정 기간 미래의 최강대국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한국의 전략 대상은 트럼프 시대뿐 아니라 트럼프 이후의 미국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란 전쟁의 과잉 팽창과 경제적 충격은 미국 내에서 전략적 반성을 촉발하고 있다. 단독 행동의 한계가 드러날수록 미국은 동맹국의 자발적 기여와 전략적 방향 설정을 구하게 된다. 이 지점이 한국에 기회의 창으로 한국의 국익 실현을 위한 대미 전략 구도가 필요하다. 한미동맹의 신뢰성을 유지하면서 미국의 전략 재조정 과정에 한국의 구상을 투입하는 이중 과제, 경제·기술·소프트파워를 포괄하는 다차원적 전략 파트너십으로 한미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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