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창덕]
2026.04.07.

김창덕 논설위원
한 기업의 노조도 ‘여론’을 잘 살펴야 한다. 첫째는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이다. 지도부 선출권이 있는 노조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건 당연하다. 둘째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비(非)노조원. 직장 동료긴 해도 노조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설득해야 노조도 세를 불리고 협상력을 키운다. 셋째는 기업 밖의 시선이다. 노사 협상과 직접 관련이 없어도 외부 여론의 향방에 따라 노조는 때로 날개를 달기도 하지만, 반대로 고립된 섬이 되기도 한다.
최근 노사가 가장 치열하게 맞붙고 있는 곳 중 하나가 국내 1위 기업 삼성전자다. 지난달 27일 교섭 중단을 선언한 이 회사 노조는 다음 달 하순부터 총파업도 예고한 상태다. 그렇다면 삼성전자 노조는 세 여론에 얼마나 귀를 기울여 왔을까.
메모리 사업부만 유리한 노조 요구안
삼성전자 노조를 이해하려면 우선 회사 사업 구조부터 알아둘 필요가 있다. 크게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과 반도체(DS) 부문으로 나뉜다. DX에는 스마트폰과 가전 등이 있고 DS는 메모리반도체, 파운드리, 시스템LSI 사업부로 구분된다. 국내 임직원이 약 12만 명인 삼성전자에서 최대 노조는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초기업노조)’로, 지난달 말 7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조합원의 80%는 DS 부문이고, 그중 절대다수가 메모리 사업부 소속이다.
초기업노조가 교섭을 중단한 것은 초과이익성과급(OPI) 제도 개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서다. OPI는 목표 이상의 실적을 달성하면 영업이익에서 법인세, 투자비, 배당 등을 제외한 금액의 20% 정도를 재원으로 ‘연봉의 최대 50%’를 지급하는 보상이다. 재원을 ‘영업이익의 10%’로 바꾸고 개별 상한도 풀어 달라는 게 노조의 최종 요구안이었다. 사측이 “업계 최고 대우” 약속과 함께 특별 보상까지 제시했지만 노조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노조 주장도 일부 이해는 된다. ‘작년 실적이 좋았으니 성과급을 최대한 챙겨 달라’는 것은 조합원 권익을 위해 충분히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 게다가 올해 영업이익은 작년의 몇 배가 될 것으로 예상돼 이번에 ‘상한제’를 폐지해야 내년 초 더 큰 목돈을 쥘 수 있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문제는 방법론에 있다. 초기업노조는 재원 기준을 영업이익으로 바꾸자고 하면서 부문별로 공통 지급하던 OPI의 60%는 사업부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안을 내놨다. DS 부문의 경우 적자를 낸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사업부 성과급을 뚝 떼어내 실적이 좋았던 메모리 사업부에 몰아주는 구조다. 같은 조합원이라도 소수는 희생해도 된다는 것이다. 비조합원은 또 어떤가. 70% 이상이 해당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DX 부문은 애초부터 지도부 관심사에서 멀어져 있었던 듯하다. 대기업 노조들 중 이렇게 한 특정 집단만 유리한 안을 놓고 사측과 대립했던 사례가 있었나 싶다.
파업 전까지 합리적 방안 도출하길
조합원 중 소수 집단, 그리고 비조합원들의 여론에 귀를 닫았던 초기업노조는 파업 참여율로 한 번에 ‘명분’을 얻으려 하고 있다. 그러니 파업에 불참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줄 것 같은 협박성 발언을 한다든지, 회사에 협조적인 동료를 찾아 신고하게 하는 등의 무리수가 나오는 것이다. 그보다는 다수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갖게 된 소수의 동료들을 먼저 챙기는 게 노조가 가져야 할 책임감이 아닐까 한다.
삼성전자는 저성장 기조 늪에 빠진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버팀목이다. 그런 기업에서 억대 연봉을 받으며 일하는 직원들이 “확실한 피해를 입혀야 한다”, “파업하면 회사는 10조 원 손실” 같은 거친 발언을 쏟아내면 외부 시선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귀족노조’ 탄생을 알릴지, 노사가 합리적 상생 방안을 만들어낼지 아직 파업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다.
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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