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다가오는 오늘

dalmasian 2026. 4. 29. 07:41

[살며 사랑하며] 2026.04.29.

지금이야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며 세상을 감각하는 게 지극히 당연하겠지만, 언젠가는 안간힘을 써도 눈꺼풀 한 겹 들어 올리지 못할 순간이 올 것이다. 이 자명한 사실을 두고 생각해 보면, 지금 나는 수많은 ‘할 수 있음’의 힘을 누리고 있다. 시선을 고이고, 몸을 일으키고, 귀 기울여 듣고, 손을 내밀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일들 말이다.

나의 소멸이 멀리 있다고 여길수록 삶은 늘어진 고무줄처럼 탄력을 잃는다. 영원할 것처럼 권태롭게, 모든 게 그대로 머물듯 방심하며 살아 버린다. 내일이 그날이라면, 더는 눈꺼풀을 들어 올릴 수 없게 되기 전의 마지막 하루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게 될까. 이런 상념을 붙들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느낌이 사뭇 달랐다. 햇빛 한 줄기에도 끝이라는 전제가 얹히자 관성대로 움직이던 몸짓이 새로웠다. 평소라면 거들떠보지 않았을 장면도 단 한 번 허락된 기회처럼 보였다. 할 수 있는 일은 어제와 다를 게 없었지만, 그 힘을 어떻게 쓸 건지는 나에게 달려 있었다. 한정된 시간은 정신을 조급하게 만들기보다 명료하게 만들었다. 뱉는 말들을 고칠 수 없는 유언장처럼 다루니 모난 말 대신 둥근 말이 자라났다. 사소한 짜증이나 쓸데없는 자존심은 금세 힘을 잃었기에 자신을 채근하거나 타인을 탓하는 데 마음을 소모하지 않았다. 그저 눈에 닿는 풍경과 가슴팍에 스치는 옅은 심상 하나하나가 애틋했다.

부지런히 깜빡이며 세상을 담아내던 눈꺼풀이 닫히고 생의 등불이 꺼지는 순간은, 내가 살아낸 오늘만큼 가까워졌을 것이다. 나의 소멸이라는 밑바탕을 선명하게 깔아두니 그 위에 그려지는 삶의 색채가 훨씬 또렷해진다. 매일을 마지막처럼 살 수야 없겠지만, 가끔은 살아 있음으로 누리는 이 힘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돌아보련다. 당연하게 여겨온 몸짓이 실은 얼마나 커다란 힘인지 잊지 않기 위해서.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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