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겸허히’란 말이 은폐하는 것

dalmasian 2026. 4. 29. 17:34

[전문기자의 窓] 2026.04.27.

김선태 전 충주시 주무관의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된 2026 여수 세계 섬박람회 주 행사장 공사 현장. 이 동영상 공개 이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자 전남도 측은 동영상 댓글을 통해 '따끔한 말씀도 겸허히 받아들이며 더 나은 모습으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유튜브

“이 열차는 신호 대기로 인해 잠시 정차 중입니다.” 잘 달리던 지하철이 선로에서 멈춰 설 경우 대개 이런 방송이 나온다. 그런데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것은 방송의 다음 멘트다. “안전한 전동차 내부에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빨리 가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문득 ‘안전한가 위험한가’의 문제로 바뀌어버린 셈이다.

겸허(謙虛)의 사전적 의미는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태도가 있음’이다. 선거에서 패한 후보자가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하고 정계를 떠난다면 그런대로 어울리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좀 이상한 경우가 보인다. ‘겸허’라는 말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여기저기서 오남용되고 있는 것이다. 개막이 얼마 남지 않은 박람회 행사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는 보도가 나오자 해당 지자체는 “따끔한 말씀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과거 여러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된 연예인은 “이 모든 질책을 겸허히 수용하고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사람들이 알고 싶은 것은 “도대체 남은 기간 동안 어떻게 행사 준비를 할 것인지 대책이 있느냐”와 “제기된 의혹이 어디까지가 사실이냐”는 것인데 당사자는 ‘겸허’ 타령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의 태도가 겸허한가, 겸허하지 않은가’를 알고 싶은 것이 아닌데도, 앞서 언급한 지하철 방송처럼 논점을 돌리는 효과를 얻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쯤 되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말은 ‘내가 겸허하다고 했는데 어쩔 건가’ ‘배 째라’ ‘나도 더 이상은 물러설 곳이 없다’ ‘비울 테니 채워 달라’는 배수의 진이거나, ‘겸허라는 말까지 써 가며 무릎을 꿇은 것은 반격의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는 태세 전환의 예고처럼 비칠 지경이다.

예전엔 ‘겸허’란 말이 이런 식으로 쓰이지 않았다. 1980년 3월 26일 조선일보 사설은 정당 행사에서 폭력 사태가 일어난 것을 두고 ‘모름지기 국민 앞에 반성의 겸허한 자세를 표시해야 마땅했을 것이다’라고 썼다. 1965년의 한 서평에선 평생 절대자에게 고개를 숙인 교황 요한 23세의 구도적 삶을 두고 ‘겸허했다’고 표현했다.

반성과 각성이 따르지 않은 채 핵심을 은폐하는 ‘겸허’란 말은, 마치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전가하고 꼬리 자르기를 하면서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 둘러대는 것만큼 뻔뻔스럽게도 보인다. 그러나 제갈량은 서슬 퍼런 법과 원칙의 집행자 역할을 하기 위해 총애하던 부하 마속을 울면서 베고, 그다음엔 자신의 직위를 스스로 강등시켰다. ‘겸허’란 이런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 ‘겸허’란 말 뒤에 숨으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반응해야 할 것 같다. “겸허한 자세로 다시 묻겠습니다. 제대로 준비할 대책은 세울 수 있는 겁니까? 무엇이 진실인지 해명할 수는 있는 거고요?”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kar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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