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서울 주택난, ‘재건축 속도전’ 넘어서야

dalmasian 2026. 5. 22. 00:40

[동서남북] 2026.05.21.
“재건축 빨리”론 문제 해결 못해
지상과 지하 공간 더 활용하는
입체적 도시 재설계·상상력 필요
도심 밀도는 뉴욕·도쿄보다 낮다

서울 성북구 장위뉴타운 일대가 재개발로 아파트촌이 된 장위3동(왼쪽)과 재개발이 안된 장위1동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운호 기자

서울의 전·월세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실수요자들은 집 걱정에 시달리고 있다. 저출생 위기 속에 모처럼 신혼부부가 늘었지만 정작 살 집이 부족하다. 영끌에 부모 힘까지 빌어 감당 못할 빚을 지거나 인천·경기에서 매일 왕복 3시간 넘게 출퇴근하는 고단한 삶을 감내하고 있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들 공약을 보면 답답하다. 폭행 전과, 광화문광장 감사의정원 논란으로 충돌하지만 정작 시민 삶과 직결된 주택 문제에 대한 미래 비전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세훈 시장은 공급을 늘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한다. 정원오 전 성동구청장은 당선되면 정부와 협의해 오 시장보다 더 빨리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두 후보 모두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속도를 당기는 것 외에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장 후보라면 관점을 더 확장해야 한다. 선거 때마다 나오는 ‘재건축 속도전’을 넘어 서울을 ‘입체 도시’ ‘3차원 도시’로 재설계하는 전략과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고밀 도시지만 정작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공간이 많다. 미국 뉴욕, 일본 도쿄보다 평균 밀도가 높다고 하는데 이는 서울에 고층 아파트가 빽빽하기 때문이다.

2024년 12월 10일 서울 남산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서울 도심 전경./전기병 기자

광화문, 강남, 여의도 등 핵심 업무지구의 개발 밀도는 뉴욕이나 도쿄보다 상당히 낮다. 서울 도심의 재개발 사업 용적률은 1100% 안팎인데 뉴욕 맨해튼은 1800% 이상, 철도 차량기지를 개발한 허드슨야드는 3300%에 육박한다. 도쿄는 시부야, 마루노우치 등 도심 재생특구의 경우 최고 1800% 수준이다. 이는 서울 도심의 개발 여력이 여전히 크다는 뜻이다. 낡은 도심을 초고층으로 복합 개발해 시민들에게 필요한 시설을 넣고 주상복합, 오피스텔 등을 공급할 수 있다. 도시 경쟁력을 높일 글로벌 기업 유치도 가능하다.

나아가 서울 아래에 ‘지하 도시’를 만들어 빌딩을 네트워킹하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도쿄 마루노우치나 시부야에 가면 빌딩 지하를 연결해 지상 교통량을 분산하고 새로운 상권을 만들었다. 빌딩끼리 지하 주차장도 공유한다.

서울 영동대로 라이트워크 조감도. /도미니크 페로

서울에도 강남구 삼성동 영동대로 지하에 비슷한 콘셉트의 복합 환승 센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도로와 철도, 물류 시설을 지하에 넣고 지상에 공원을 조성하는 혁신적 시도다. 햇빛이 지하 7층까지 내리쬐도록 만든다. 설계를 맡은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는 “자연의 빛을 끌어들여 지하 7층에서도 지하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했다”며 “지상과 지하 공간이 융합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엔 파리도 지하로 눈을 돌려 주택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페로는 “복합 환승 센터가 완공되면 지하 공간을 보는 한국 사람들의 시각이 바뀔 것”이라고 했다.

서울 영동대로 라이트워크 조감도. /도미니크 페로

꼭 지하에 살자는 게 아니다. 지하 공간을 적극 활용하면 그만큼 지상에 더 많은 주택과 공원, 사람을 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영동대로 외에 경부고속도로, 창동 차량기지, 수서 차량기지도 지상과 지하를 입체 개발하면 주택과 업무 시설을 대량 공급하면서도 쾌적한 도시가 될 수 있다. 이를 실현하려면 서울시장이 용도 지역 등 규제와 도시계획 제도를 과감히 바꿔야 한다. 이는 1차적으로 시장의 권한이다. 도쿄, 뉴욕, 런던 등 서울과 경쟁하는 글로벌 도시들은 이미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전통적인 부동산 개발의 안목으로는 공급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을 재배치·재정의해 효율을 극대화하고 전략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지금 서울에 필요한 건 재건축 속도전이 아니라 도시를 다시 설계할 안목과 상상력이다. 서울시장 후보라면 그런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최종석 기자 comm@chosun.com
Copyright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