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뉴스 읽기]2026.05.21.
계엄에 떨어져 나간 별들
파면·해임 등 중징계 계속돼
전 해군총장, 계엄버스 탑승자도
“군인으로서 최선의 선택이었다“
일각선 ‘정치적 숙청’ 논란

2024년 12월 4일 새벽, 계엄군이 국회 본관 정문 앞에서 국회 사무처 직원, 보좌진 등과 대치하고 있다. 계엄군은 정문이 막히자 사무실 유리창을 깨고 진입했지만, 의원들이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을 위해 모인 본회의장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날 국회에 투입된 병력은 약 280명으로 추정된다. /김지호 기자
12·3 계엄에 연루돼 징계를 받은 군 장성이 이달 초 기준 37명으로 집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계엄 1년 6개월 만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전역했거나, 사실상 강제 전역을 앞두고 있다. 이처럼 군 수뇌부가 급격히 물갈이된 건 1993년 하나회 숙청 사건 이후 처음이다. 당시 군복을 벗은 하나회 출신 장성은 40여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군에서는 그때와 같은 대규모 숙청이 30여년 만에 재현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조선시대 사화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어”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에 따르면, 국방부가 밝힌 장성들의 징계 사유는 대부분 ‘법령 준수 의무 위반’이나 ‘성실 의무 위반’이다. 비상계엄 당시 군 병력을 국회와 선관위에 출동시킨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이 이 혐의로 파면됐다. 계엄·탄핵 국면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국회 문을 부수고 안에 있는 인원을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한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해임됐다. 파면당한 군인은 연금의 절반만 지급받고, 해임은 정상 지급된다. 국방부는 곽 전 사령관이 재판 과정에서 협조적으로 나온 점을 정상 참작해 파면이 아닌 해임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렇게 계엄 당시 계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하거나 병력 투입에 관여한 장성들은 모두 파면, 해임 등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들은 내란 혐의 등으로 재판도 받고 있다. 징계·전역 대상 장성 숫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2차 종합 특검 수사가 진행 중이고, 군에서도 이른바 ‘내란 청산’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조선시대의 사화(士禍)와 같은 일이 군인들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며 “언제까지 숙청이 계속될지, 누가 대상자가 될지 예상이 안 된다”고 했다.
“계엄 직접 연루 안 된 군인도 징계, 정치적 숙청”
문제는 어디까지를 ‘계엄 동조’로 봐야 할지다. 징계를 받고 전역 조치된 군인 중 일부에 대해서는 그 적절성을 두고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른바 ‘계엄 버스’ 관련 장성 일괄 징계가 대표적이다. 육군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2024년 12월 3일 밤 서울 용산 합동참모본부에 꾸려진 계엄 상황실에 파견할 인원을 추렸다. 계엄 버스가 충남 계룡대에서 출발한 건 다음 날 새벽 3시였다.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된 지 2시간 지난 뒤였다. 계엄 버스는 출발 25분 만에 돌아왔다. 이들은 “혼란스러운 와중 명령 체계 문제 때문에 버스가 뒤늦게 출발했다 돌아온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특검과 민주당은 늦은 출발이 ‘2차 계엄’을 위한 것이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버스에 탑승한 장성 14명이 징계 대상에 올랐다.

그러나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계엄 버스 탑승자 중 상당수는 “계엄이 해제됐는데도 용산으로 출발한 건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북한 관련 상황 등이 있었을 것이라 판단했다는 것이다. 명령에 따라 버스에 오른 것일 뿐, 정보 부족으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었다는 취지다. 계엄 버스 상경을 총괄한 것으로 지목된 고현석 전 육군참모차장도 “계엄 버스에 탑승한 육군본부 인력이 계엄사 구성과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본인의 직위 때문에 계엄상황실로부터 역할을 부여받았던 합참 소속 일부 장성들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성실 의무 위반 혐의로 정직 1개월 중징계 처분을 받은 강동길 전 해군참모총장이 대표 사례다. 계엄 당시 합참 군사지원본부장이었던 그는 이재명 정부 출범 후인 작년 9월 대장으로 진급해 해군참모총장에 임명됐다. 계엄상황실에 있었지만, 계엄과는 상관없다는 군의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공무원의 계엄 연루를 조사하는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가 올해 초 강 전 총장이 비상계엄 때 일정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고, 이에 따라 그는 징계를 받았다. 강 전 총장은 계엄에 동조하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하는 의견까지 냈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강 전 총장은 최근 2차 종합특검 조사에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이상함을 느껴 김명수 전 합참의장에게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계엄 발동 후 절차에 따라 계엄사령부가 설치됐고 거기에 합참 주요 인원이 들어가게 된 것”이라며 “주요 직위자라서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죄가 된다는 건 비합리적”이라고 했다.
이런 논란 때문에 계엄 관련 군 장성의 징계·전역이 사실상 ‘정치적 숙청’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은 “징계를 받은 대다수 장성이 항고하고 있다”며 “징계의 기준도 불명확하다는 점에서 정당한 징계라기보다는 정치적 희생양 만들기에 가깝다”고 했다.
계엄 장성 물갈이 규모, 하나회 숙청 넘어서나
군에서는 계엄으로 인한 장성 물갈이의 규모가 하나회 숙청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미 전역해 국방부 징계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인사들이 있고, 2차 종합 특검이 진행 중이며, 민주당이 3차 특검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례적인 인사 파동이지만, 크게 드러나는 군 반발이 없는 건 의아하다는 평가가 많다. 한 영관급 장교는 “군은 상명하복이 기본인 조직인데, 단순히 명령을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징계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얘기를 사석에서 많이 한다”며 “그러나 불법 계엄 자체가 워낙 중한 죄이기 때문에 대놓고 그런 말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국방부가 비상계엄 불이행 장병을 예우하고 포상한 것도 군의 침묵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국방부는 작년 국군의 날 “부당한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10명에게 정부 포상을 수여했고, 일부는 특별 진급시켰다. 군 관계자는 “군인들에게 진급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진급 시기가 되면 경쟁자를 흠집 내기 위한 투서가 남발하는 게 현실”이라며 “장성이 수십 명 사라졌다는 건 누군가에겐 기회일 수 있다”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하나회 출신 장성 숙청을 보도한 1993년 3월 9일 자 본지 보도. /조선일보 DB
☞하나회 숙청 사건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군 내 비밀 사조직 ‘하나회’의 멤버들을 숙청한 사건. 취임 11일 만에 핵심 보직 장성을 해임·전역·배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두 달만에 18명의 장군이 군복을 벗었고, 이후 여파로 총 40여명의 하나회 출신 장성이 예편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회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주도로 결성됐으며 12·12 군사 반란을 주도했다.
이재명 정부, 軍 복종 의무 없앤다
12·3 계엄의 여파는 군의 기본 원칙이었던 ‘상명하복’도 흔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작년 10월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건군 77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대통령실
국방부는 작년 11월 ‘군인은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군인복무기본법 제25조 개정에 찬성한다는 의견서를 국회에 냈다. 이 의견서에서 국방부는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군인복무기본법 25조를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정당한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단서 조항으로 ‘단, 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경우에는 거부할 수 있으며, 이를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문구도 추가하자고 했다.
관련 법률 개정 움직임은 12·3 계엄 직후부터 있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범여권은 군인의 명령 불복종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의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을 다수 발의했다. 안규백 장관도 취임 전 국회의원 신분으로 법안 발의에 동참했다.
군 안팎에서는 이 같은 법률안 개정이 군 지휘 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군 관계자는 “정당한 명령이란 건 지극히 주관적인 개념”이라며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마저 자신의 소신을 지킨다며 항명한다면 앞으로 군 조직이 유지될 수 있겠나”고 했다.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은 “상관의 명령에 대한 정당성 판단이라는 과도한 부담을 장병에게 떠넘겨 지휘의 즉각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비상계엄 당시 상관의 명령에 따라 ‘계엄 버스’에 탔다가 정직 1개월 중징계를 받은 조재명 전 육군 사이버작전센터장은 최근 법정에서 “(버스에 타라는 명령에 따른 건) 군인으로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몇 번을 다시 생각해 봐도 그 순간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국가와 국민에게 충성을 다하는 군인으로 남게 해주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조 전 센터장은 국방부를 상대로 정직 처분 취소 소송을 진행 중이다.
양승식 논설위원 yangsshi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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